강문한(姜文翰)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C15BB38D55CB1464X0 |
자(字) | 덕윤(德允) |
생년 | 1464(세조 10) |
졸년 | 1547(명종 2)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진주(晉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강자위(姜自渭) |
묘소 | 회덕 자운동 한사산 |
[상세내용]
강문한(姜文翰)
1464년(세조 10)∼1547년(명종 2).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덕윤(德允).
고려시대 병부상서(兵部尙書) 태자태사(太子太師) 은열공(殷烈公) 강민첨(姜民瞻)의 후손으로, 통훈대부(通訓大夫) 북청판관(北靑判官) 강자위(姜自渭)의 아들이다.
그의 선대(先代)는 대대로 온양(溫陽)에서 살았으나 그의 대(代)에 와서 회덕현(懷德縣) 자운동(紫雲洞) 한사산(寒寺山, 대덕구 석봉동 한절구지 일대) 일대로 이주하여 살게 되어 입향조(入鄕祖)가 되었다. 연산현감, 사복시정(司僕寺正), 가선대부(嘉善大夫) 행동지중추부사(行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1681년에 추보된 『회덕향안(懷德鄕案)』에는 향원으로 수록되어 있는데 진주강씨로는 최초의 인물이다. 슬하에 7남 4녀를 두었다.
묘소는 회덕 자운동 한사산에 있고, 1949년에 후손 강면식(姜冕植)이 찬(撰)하고 강인환(姜仁煥)이 쓴 묘비가 있다.
그의 선대(先代)는 대대로 온양(溫陽)에서 살았으나 그의 대(代)에 와서 회덕현(懷德縣) 자운동(紫雲洞) 한사산(寒寺山, 대덕구 석봉동 한절구지 일대) 일대로 이주하여 살게 되어 입향조(入鄕祖)가 되었다. 연산현감, 사복시정(司僕寺正), 가선대부(嘉善大夫) 행동지중추부사(行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1681년에 추보된 『회덕향안(懷德鄕案)』에는 향원으로 수록되어 있는데 진주강씨로는 최초의 인물이다. 슬하에 7남 4녀를 두었다.
묘소는 회덕 자운동 한사산에 있고, 1949년에 후손 강면식(姜冕植)이 찬(撰)하고 강인환(姜仁煥)이 쓴 묘비가 있다.
[참고문헌]
晉州姜氏世譜
姜文翰墓碑
姜文翰墓碑
[집필자]
이원배
대표명 | 강문한(姜文翰) |
명 | 문한(文翰) |
명 : "문한(文翰)"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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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