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책(權策)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2AD8CCC45FFFFB1444X0 |
| 호(號) | 오봉(五峰) |
| 생년 | 1444(세종 26) |
| 졸년 | ?(미상) |
| 시대 | 조선전기 |
| 본관 | 안동(安東) |
| 활동분야 | 충효열 > 충신 |


[상세내용]
권책(權策)
1444년(세종 26)∼미상. 조선 전기 충신. 호는 오봉(五峰)이다.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출신지는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영해면(寧海面)이다.
부친 권자홍(權自弘)의 3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 당고모는 문종비(文宗妃) 현덕왕후(顯德王后) 권씨(權氏)이고, 단종은 육촌동생이며, 당숙부는 권자신(權自愼)이다.
1456년(세조 2) 단종의 외삼촌인 권자신이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 등과 함께 단종 복위를 도모하려다 발각되어 가문 전체가 멸문지화를 당했을 때 자신의 두 형도 함께 변을 당했으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죽음을 면하고 영덕군 영해면의 인량(仁良)으로 귀양 보내졌다.
유배지에서 세종의 여섯 째 아들 금성대군(錦成大君)이 단종 복위를 도모하던 사육신과 연루되었다는 죄목으로 경상북도 영주(榮州) 순흥(順興)으로 유배된 후 사사되자 죽령(竹嶺)을 바라보며 통곡하였으며, 단종의 죽음이 전해지자 집터 뒤의 왕암봉(王巖峰)에 올라 단종이 있던 북쪽을 향해 통곡하였다.
많은 저서를 하였으나 그 당시 용납되지 못할 글귀들을 많이 적었기 때문에 죽음에 임해서는 자신의 글로 인해 후손들에게 화가 미칠까 두려워 모두 불태워버렸다. 또 평생토록 당숙부와 두 형과 한날한시에 같이 죽지 못한 것이 일생의 한이었으니 장례를 간략히 치르도록 명을 하고 죽었다.
유배지의 대봉재사(大峰齋舍)에 당숙부 등과 함께 배향되었으며, 유배당한 후 평생을 지낸 화수루(花樹樓)와 초가까치구멍집은 현재 영덕군 유형문화재 제 82호로 지정되어 있다.
부친 권자홍(權自弘)의 3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 당고모는 문종비(文宗妃) 현덕왕후(顯德王后) 권씨(權氏)이고, 단종은 육촌동생이며, 당숙부는 권자신(權自愼)이다.
1456년(세조 2) 단종의 외삼촌인 권자신이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 등과 함께 단종 복위를 도모하려다 발각되어 가문 전체가 멸문지화를 당했을 때 자신의 두 형도 함께 변을 당했으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죽음을 면하고 영덕군 영해면의 인량(仁良)으로 귀양 보내졌다.
유배지에서 세종의 여섯 째 아들 금성대군(錦成大君)이 단종 복위를 도모하던 사육신과 연루되었다는 죄목으로 경상북도 영주(榮州) 순흥(順興)으로 유배된 후 사사되자 죽령(竹嶺)을 바라보며 통곡하였으며, 단종의 죽음이 전해지자 집터 뒤의 왕암봉(王巖峰)에 올라 단종이 있던 북쪽을 향해 통곡하였다.
많은 저서를 하였으나 그 당시 용납되지 못할 글귀들을 많이 적었기 때문에 죽음에 임해서는 자신의 글로 인해 후손들에게 화가 미칠까 두려워 모두 불태워버렸다. 또 평생토록 당숙부와 두 형과 한날한시에 같이 죽지 못한 것이 일생의 한이었으니 장례를 간략히 치르도록 명을 하고 죽었다.
유배지의 대봉재사(大峰齋舍)에 당숙부 등과 함께 배향되었으며, 유배당한 후 평생을 지낸 화수루(花樹樓)와 초가까치구멍집은 현재 영덕군 유형문화재 제 82호로 지정되어 있다.
[참고문헌]
[집필자]
이원배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