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경(金升卿)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E40C2B9ACBDB1430X0 |
자(字) | 현보(賢甫) |
생년 | 1430(세종 12) |
졸년 | 1493(성종 24)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경주(慶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김신민(金新民) |
증조부 | 김균(金稛) |
[관련정보]
[상세내용]
김승경(金升卿)
1430년(세종 12)∼1493년(성종 24).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현보(賢甫).
계림군(鷄林君) 김균(金稛)의 증손이고,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 김신민(金新民)의 아들이다.
1453년(단종 1) 생원시에 합격하고, 1456년(세조 2)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예조참판‧대사헌에 이르렀다. 그는 벼슬길에 오르기 전부터 이미 자질과 명성이 세상에 알려졌고, 또한 효성이 지극한 것으로 유명하였다.
승정원에 재직할 때 직무에 충실하고 행정능력이 뛰어나 왕에게서 금띠〔金帶〕를 하사받기도 하였으며, 특히 송사처결에 있어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그러나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 때 연좌되어 부관참시(剖棺斬屍)의 추형(追刑)을 당하였다.
계림군(鷄林君) 김균(金稛)의 증손이고,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 김신민(金新民)의 아들이다.
1453년(단종 1) 생원시에 합격하고, 1456년(세조 2)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예조참판‧대사헌에 이르렀다. 그는 벼슬길에 오르기 전부터 이미 자질과 명성이 세상에 알려졌고, 또한 효성이 지극한 것으로 유명하였다.
승정원에 재직할 때 직무에 충실하고 행정능력이 뛰어나 왕에게서 금띠〔金帶〕를 하사받기도 하였으며, 특히 송사처결에 있어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그러나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 때 연좌되어 부관참시(剖棺斬屍)의 추형(追刑)을 당하였다.
[참고문헌]
端宗實錄
世祖實錄
成宗實錄
國朝人物考
燃藜室記述
金升卿墓誌
世祖實錄
成宗實錄
國朝人物考
燃藜室記述
金升卿墓誌
[집필자]
홍순창(洪淳昶)
성명 : "김승경(金升卿)"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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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