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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원효(奉元孝)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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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원일(元一)
생년1426(세종 8)
졸년?(미상)
시대조선전기
본관하음(河陰)
활동분야문신 > 문신
봉신(奉紳)

[상세내용]

봉원효(奉元孝)
1426년(세종 8)∼미상. 조선 성종 때의 문신. 본관은 하음(河陰). 자는 행가(行可)원일(元一). 봉신(奉紳)의 아들이다.

1474년(성종 5)에 훈도(訓導)로서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문한직(文翰職)을 거쳐 사헌부감찰이 되었다.

1474년 정회(鄭淮)성현(成俔) 등과 함께 문과중시에 뽑혀 문명을 떨쳤다.

1483년 2월에는 황해도도사(黃海道都事)를 거쳐 강원도도사로 전직되었다.

이때 황해도에 해마다 기근이 계속되고 여질(癘疾)이 유행되었는데도 시정(施政)이 적절하지 못하여 백성이 떠돌아 다닌다는 사간원의 탄핵을 받아 국문을 받고 파직되었다.

뒤에 다시 기용되어 1487년 장령으로 경연(經筵)에서 한재(旱災)해결방안으로 수개도감(修改都監)군적청(軍籍廳)춘관도감(春官都監)의 직무를 일시 정지하여 지출경비를 줄일 것을 건의하였다. 왕은 이를 받아들이려고 하였으나 여러 도감의 임무가 중요하니 그 직무를 정지할 수는 없다고 하여 그 경비의 감소만을 명하였다.

경연에 계속 참여하여 혼인풍속의 폐단, 별시(別試)의 잦은 설행에 따른 폐단 등을 건의하였다.

1488년 사간에 임명되어 귀척(貴戚)의 불법을 바로잡아 조정의 기강을 확립할 것을 건의하였다.

[참고문헌]

成宗實錄
國朝榜目

[집필자]

장동익(張東翼)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2010-04-27문과기록을 참고하여 부명 봉신(奉伸)을 봉신(奉紳)으로 고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