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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곡(柳轂)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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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치원(致遠)
호(號)독락정(獨樂亭)
생년1415(태종 15)
졸년?(미상)
시대조선전기
본관문화(文化)
활동분야문신
부유중지(柳中之)

[상세내용]

유곡(柳轂)
1415년(태종 15)~미상. 조선 전기 문신. 자는 치원(致遠)이고, 호는 독락정(獨樂亭)이다. 본관은 문화(文化)이다. 거주지는 충청남도 부여이다.

증조부는 유유(柳濡)이고, 조부는 유위(柳衛)이다. 부친 유중지(柳中之)와 모친 곽종(郭悰)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형은 유식(柳軾)이다. 부인은 조겸지(趙謙之)의 딸이다.

1441년(세종 23) 식년시에서 정과 7위로 급제하였다. 이후 좌랑(佐郞) 등을 역임하였고, 세조의 정권 탈취에 가담하여, 원종공신(原從功臣)으로 책록되었다.

1461년(세조 7) 광주목사(光州牧使)로 재직 중에, 정종(鄭悰)이라는 사람이 자신은 해탈한 성불(成佛)이라고 주장하며 고을 사람들을 모두 죽이겠다는 등의 망발을 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전라도도관찰사(全羅道都觀察使) 함우치(咸禹治)는 이러한 사실을 임금에게 보고하고, 아울러 유곡(柳轂)이 목사의 직분에 있으면서도 이러한 자들을 방치하였다고 아뢰어 국문(鞠問)에 처할 것을 건의하였다. 그 결과 의금부(義禁府)에 투옥되었다.

이후 심문을 거쳐 형벌이 논의되었는데, 처음에는 교수형이 건의되었다가, 이후 잘못을 뉘우친 점이 감안되어 사형에서는 감면되었다. 그러나 검거를 태만히 하였다는 죄목으로, 그와 가족들은 모두 춘천(春川)의 관노로 전락하였다.

묘소는 충청남도 부여군(扶餘郡) 충화면(忠化面) 만지리(晩智里)에 있다.

[참고문헌]

國朝文科榜目
世祖實錄

[집필자]

정병섭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