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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구(河久)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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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호(諡號)안평(安平)
생년1380(고려 우왕 6)
졸년1417(태종 34)
시대조선전기
본관진양(晉陽)
활동분야무신 > 무신
하륜(河崙)
이씨(李氏)
처부이종덕(李種德)
처부김음(金愔)

[상세내용]

하구(河久)
1380년(고려 우왕 6)∼1417년(태종 34). 본관은 진양(晉陽).

아버지 하륜(河崙)과 어머니 이씨(李氏)의 4남 2녀 중 맏이로 태어났다.

이종덕(李種德)의 딸에게 장가를 들었으나, 자식이 없어 김음(金愔)의 딸을 첩으로 삼았으며, 기첩(妓妾) 한선연(漢嬋娟)이 있었다.

아버지의 자질(資秩)로 인하여 나이 23세에 대언(代言)이 되었다.

1408년 임금의 거가를 제대로 호위하지 못한 일이 있어 순금사(巡禁司)에 하옥되었다가 3일 만에 석방되었다. 1410년 도총제로서 각을 불던 날에 명에 달려오지 못하여 파면되었다. 1411년 사헌부에서 청성군(淸城君) 정탁(鄭擢)연성군(蓮城君) 김정경(金定卿) 등과 함께 종묘(宗廟)의 춘향제(春享祭)의 헌관(獻官)으로서 미처 서계(誓戒)하지 못했다 하여 죄를 청하였으나 공신의 아들이라 하여 용서받았다.

한번은 부모가 모두 살아 있는데, 시향(時享)의 재계〔致齋〕가 있다고 하여, 당번인데도 숙직을 하지 않아 그 죄를 청하였으나, 임금이 특별히 용서하여 주었다. 1411년 8월에 좌군총제(左軍摠制)로서 병조판서 황희(黃喜)와 함께 약재를 보내준 것을 사은하기 위해 경사에 갔다 온 뒤 중군도총제(中軍都摠制)가 되었다가 아버지 하륜의 상언으로 좌군총제로 되었다. 1412년 별사금(別司禁)좌변제조(左邊提調)가 되었다. 1413년 우군도총제가 되었다. 1416년에 좌군도총제(左軍都摠制)에 임명되었으나 1417년 부친상을 당하여 병이 깊어져 상을 마치지 못하고 나이 38세로 죽었다.

시호는 안평(安平)이다.

부친 하륜이 그의 이름을 지으면서 적은 글에,

‘나무가 오래 살면 바위 골짜기에서 우뚝 솟아나고, 물이 오래 흐르면 넓은 바다에 다다른다[木之生久則必聳乎巖壑 水之流久則必達乎溟渤]’라고 하였다.

아들 하복생(河福生)이 있다.

[참고문헌]

朝鮮王朝實錄

[집필자]

김혜영
수정일수정내역
2008-12-312008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