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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견(趙狷)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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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異名)조윤(趙胤)
호(號)송산(松山)
시호(諡號)평간(平簡)
생년1351(충정왕 3)
졸년1425(세종 7)
시대조선전기
본관평양(平壤)
활동분야문신 > 문신
조덕유(趙德裕)
외조부오의(吳懿)
공신호개국공신

[상세내용]

조견(趙狷)
1351년(충정왕 3)∼1425년(세종 7). 고려조선초의 문신. 본관은 평양(平壤). 초명은 윤(胤). 호는 송산(松山).

부친은 판도판서(版圖判書) 조덕유(趙德裕)이며, 모친은 오의(吳懿)의 딸이다. 영의정부사 조준(趙浚)의 동생이다.

유년에 출가하여 여러 절의 주지를 역임하다가 30세가 넘어 환속하고, 승직(僧職)경력으로 인하여 좌윤(左尹)에 서용되었으며, 고려말에는 안렴사(按廉使)를 지냈다.

1392년(태조 1) 상장군으로 이성계(李成桂)추대에 참여하고 개국공신 2등에 책록되었다.

1394년 경상도도절제사, 1397년 지중추원사, 1400년(정종 2) 삼사우복야(三司右僕射)를 거쳐 1402년(태종 2) 도총제(都摠制) 재직중에 사은사의 명을 받았으나, 사행이 위험하다는 소문을 듣고 병을 칭하여 이를 사퇴하였다가 사헌부의 탄핵을 받고 직첩을 몰수당한 뒤 축산도(丑山島)에 유배되었다가 곧 사면되었다.

1403년 좌군도총제가 되고 평성군(平城君)에 봉하여졌으며, 이해 진하사(進賀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1407년 충청도도절제사수군도절제사를 거쳐, 이듬해 고의로 딸의 입명(入明)를 저지한 일로 개령에 부처되었다. 곧 사면되어 청성군에 봉하여지고, 1410년 봉안사(奉安使)가 되어 태조 진영(眞影)을 완산부(完山府)에 봉안하였다.

1419년(세종 1) 판우군도총제부사(判右軍都摠制府事)에 보임되고, 1421년 3월 71세로 퇴관하여야 하였지만 궤장(几杖)을 받고 계속 벼슬길에 있다가 같은해 12월 평성부원군에 진봉하였다.

그런데 그의 생애에 있어서 “조선이 개국되고 형 조준으로 인하여 개국공신에 책록, 조준의 간곡한 출사권유가 있었지만 고려에 절의를 지켜 은거하였으며, 자손에게도 고려에의 절의를 당부하였다.”고 한 이설이 있기도 하나 신빙하기 어렵다.

양주정절사(旌節祠)송산사(松山祠)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평간(平簡)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太祖實錄
定宗實錄
太宗實錄
世宗實錄
韓國人의 族譜(日新閣, 1977)

[집필자]

한충희(韓忠熙)

명 : "견(狷)"에 대한 용례

전거용례
紀年便攷v4孫後見下
紀年便攷v5南狷有詩曰三年再過嶺南楼細細梅香勸少留舉酒消憂堪送老平生此外不須求未及還麗亡痛哭入頭流山及我 朝改名字從犬盖以國亡不死有類於犬又犬有戀舊主之意浚慮弟及禍錄開國勳籍除戶曹典書封平城府院君自頭流轉入清凉山
紀年便攷v5止按廉使與鄭夢周同心協輔王室知其兄浚有揆亂之志位曰曰我家非喬木耶當與國存亡浚知其志不可奪故使連按嶺南有詩曰三年再過嶺南楼細細梅香勸少留舉酒消憂堪送老平生此外不須求未及還麗亡痛哭入頭流山及我 朝改名狷字
紀年便攷v5孫清老見下
紀年便攷v5籍除戶曹典書封平城府院君自頭流轉入清凉山不受官每陟高峰望京痛哭人指其峯曰望京峯太祖親臨請見以賓主之禮出見揖而不拜語多不諱 上皆容之臨還命封以清溪一曲任便居住又築石室以與之終不居又避于楊州松山號松山松取
紀年便攷v5三仁何甞以囚奴之生不及刳心之死乎䂓陽從之行至楊州逸于松山善琴每撫㺯以寫懷謚靖節正祖朝享松山趙狷影堂與及元宣爲高麗三遺臣五世孫大年見下○後孫主應見下○符孫甲孫昌孫見下○符弟節玄孫球見下
紀年便攷v5原州人成安府院君顥子仕麗朝官止判三司事與趙狷爲知心友王氏運訖同隱於松山太祖屡徵不起戒子孫三世不赴舉與居相比每夜吹簫相應聲振林谷聞者悲之
紀年便攷v5曰八達山 世宗朝以石碑特㫌其閭曰高麗孝子翰林學士李皐之碑不仕於我 朝者八學士皐與趙狷李集即其三學士也隱清溪山集隱遁機里所居相近時或騎牛徃來云
大東彙纂v7生此外不湏求未及還麗亡胤痛哭入頭流山我太祖擢拜戶曹典書而招之胤答曰願採松山之薇不顧爲聖人之氓仍改名曰字從犬蓋國亡不死有類於犬且取犬有戀主之義也自頭流轉入淸溪山每陟最高峯望京痛哭人指其峯曰望京峯太祖嘉其
大東彙纂v7峯太祖嘉其節請見以賓主之禮狷出見揖而不拜語多不諱而太祖皆容之臨還命封以淸溪一曲任便居住又築石室而與之終不居移住楊州之松山因以自號平壤誌偶閱薦史聖朝受命天與人歸改寶之日市不易肆朝無換班漢都冠蓋俱松京舊臣
大東彙纂v7有類於犬且取犬有戀主之義也自頭流轉入淸溪山每陟最高峯望京痛哭人指其峯曰望京峯太祖嘉其節請見以賓主之禮出見揖而不拜語多不諱而太祖皆容之臨還命封以淸溪一曲任便居住又築石室而與之狷終不居移住楊州之松山因以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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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