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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계종(羅繼從)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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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술선(述先)
호(號)죽헌(竹軒)
생년1339(충숙왕 후8)
졸년1415(태종 15)
시대조선전기
본관나주(羅州)
활동분야문신 > 문신
나직(羅織)
외조부김재택(金在澤)
저서『죽헌유집』

[상세내용]

나계종(羅繼從)
1339년(충숙왕 복위 8)∼1415년(태종 15). 고려 말기의 문신.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술선(述先), 호는 죽헌(竹軒).

부친은 증밀직부사 나직(羅織)이며, 모친은 안동김씨김재택(金在澤)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문명(文名)이 있어 15세 때에 공민왕으로부터 사서육경 전질을 하사받기도 하였다.

1360년(공민왕 9) 국자감시에 합격하였으며, 1362년 문과에 급제, 춘추관검열사헌부시사예문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성균관순유박사(成均館諄諭博士)를 겸임할 당시에 경전을 강론하여 집주(集註)에서 발명하지 못한 깊은 뜻을 많이 해석하였으며, 전리좌랑(典理佐郞)으로 재임할 때에는 경제책(經濟策)도 올렸다.

당시에 간신들이 국정을 어지럽히자 탄핵소를 올리려다가 노모의 만류로 중지하고 한때 사직하여 은거하다가, 1374년 예문관제학으로 제수되면서 선조 문절공(文節公)의 얼을 계승하여 따르라는 뜻으로 계종(繼從)이라는 이름을 공민왕으로부터 하사받았다.

또한, 『야사(野史)』를 저술하여 당시의 의문스러운 사건들을 직필로 소상하게 기록하여두었는데, 간당들이 밤에 그의 별당에 방화하여 태워버렸다. 조선이 건국된 뒤 권근(權近)이 그에게 벼슬에 나오라고 권유하였으나, 두 나라의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면서 거절하여 망복(罔僕)의 의리를 지켰다.

저서로는 『죽헌유집』 2책이 있다.

[참고문헌]

竹軒遺集

[집필자]

김신호(金信浩)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