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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숭(盧嵩)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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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중보(中甫)
호(號)상촌(桑村)
시호(諡號)경평(敬平)
생년1337(충숙왕 후6)
졸년1414(태종 14)
시대조선전기
본관광주(光州)
활동분야문신 > 문신
노준경(盧俊卿)
공신호개국원종공신

[상세내용]

노숭(盧嵩)
1337년(충숙왕 복위 6)∼1414년(태종 14). 고려말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중보(中甫), 호는 상촌(桑村).

부친은 감찰지평(監察持平) 노준경(盧俊卿)이다.

1357년(공민왕 6)에 진사가 되고, 1365년 문과에 급제하여 정언(正言)지신사(知申事)대사헌지밀직(知密直) 등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우왕 때는 왕이 놀기를 좋아하는 것을 여러 차례에 걸쳐 간하여 왕의 미움을 사기도 하였다.

1389년(공양왕 1) 전라도관찰사가 되어 용안(龍安: 지금의 益山)영산(榮山: 지금의 나주시)에 각각 득성창(得成倉)과 영산창(榮山倉)을 세우고 성을 쌓아 조운을 편리하게 하고 왜구로부터의 피해를 막았다.

또한 조세를 3년 동안 면제시켜주도록 조정에 건의하였으며, 의창(義倉)이 없는 주군(州郡)에 이를 설치하도록 하였다. 『정진개국원종공신녹권(鄭津開國原從功臣錄券)』에 의하면 조선 개국 후 한양윤(漢陽尹)으로서 개국원종공신에 추가로 녹훈되었고 공신전 30결을 받았다.

1395년(태조 4) 개성유후(開城留後)를 거쳐 1397년에는 경기좌도도관찰사(京畿左道都觀察使)가 되었다.

이때 경기내의 땅에 고관들의 별장이 많았는데 그 차역(差役)을 고르게 하고 청탁을 하지 않아 청렴함을 보였다.

태종이 즉위하자 삼사좌사지의정부사(三司左使知議政府事)로 발탁되었으나 노모의 상을 당하여 사직하였다.

다음해에 참판승추부사(參判承樞府事)로 기복(起復)되었고, 그뒤 참찬의정부사(參贊議政府事)를 거쳐 검교우의정(檢校右議政)에 이르렀다. 죽을 때 아들들에게 불사(佛事)를 쓰지 말도록 유언하였으며, 조정에서는 3일 동안 조회를 중지하였다. 상주의 옥연사(玉淵祠)에 제향되었으며, 시호는 경평(敬平)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太祖實錄
太宗實錄
鄭津開國原從功臣錄券
嶺南人物考

[집필자]

박천식(朴天植)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