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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치(金先致)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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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1318(충숙왕 5)
졸년1398(태조 7)
시대조선전기
본관상산(商山)
활동분야무신 > 무신
김군실(金君實)
공신호일등공신
공신호추성익위공신(推誠翊衛功臣)
공신호추충보절찬화공신(推忠保節贊化功臣)

[상세내용]

김선치(金先致)
1318년(충숙왕 5)∼1398년(태조 7). 고려의 무신. 본관은 상산(商山).

판종부시사(判宗簿寺事) 김군실(金君實)의 아들이며, 정당문학(政堂文學) 김득배(金得培)의 아우이다. 낭장으로 전라도도순문사(全羅道都巡問使) 유탁(柳濯)을 따라 왜구를 격퇴했으며, 뒤에 호부낭중(戶部郞中)이 되었다.

1359년 서경에 갔을 때 이암서경을 지키지 못할 것을 알고 창고를 불태우라고 지시하자, 창고를 불태우면 적이 식량을 얻기 위해 오히려 전국에 침입할 것이니 옳은 계책이 아니라고 반대하여 중지시켰다.

1363년에 홍건적을 평정시킨 공으로 일등공신이 되어 그 형상이 벽상(壁上)에 그려졌고 토지와 노비를 하사받았다.

뒤이어 이부시랑이 되어 양광도(楊廣道)를 안찰(按察)했는데, 그때 재상이 남경(南京)의 궁궐을 헐어 백악(白岳)으로 옮기려 하므로, 왕에게 “전날 남경을 경영하매 사람과 짐승이 피곤했는데, 이제 다시 헐면 백성들이 실망할 것입니다.”라고 하여 반대하자, 왕이 놀라 그 일을 중지시켰다.

전리판서(典理判書)를 거쳐 1365년에 동북면도순문사(東北面都巡問使)가 되었으며, 다시 밀직부사(密直副使)를 거쳐 계림부윤(鷄林府尹)이 되었다.

이때 오래 해결을 보지 못한 강도사건과 그 연루자 1백여명에 대해 처결을 내렸다. 다시 상성군(尙城君)에 봉해지고 추성익위공신(推誠翊衛功臣)이 되었으며,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에 올라 전라도도순문사가 되었고, 다시 1373년에 삭방도도순문사(朔方道都巡問使)가 되었다. 우왕초에 투항해온 왜구의 무리를 유인해 죽이려다가 실패한 사건으로 수졸(戍卒)에 편입되기도 하였다.

1378년(우왕 4)에 낙성군(洛城君)에 봉해지고 추충보절찬화공신(推忠保節贊化功臣)이 되었으며, 1382년에 상주로 은퇴하였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집필자]

민병하(閔丙河)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