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구(孫鼎九)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190C815AD6CU9999X0 |
자(字) | 효경(孝卿) |
생년 | ?(미상)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시대 |
본관 | 경주(慶州) |
활동분야 | 호국 > 의병 |
부 | 손시(孫時) |
[상세내용]
손정구(孫鼎九)
생졸년 미상.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효경(孝卿).
병자호란 때의 의병장이다. 본관은 경주(慶州), 부친은 관판관(官判官)을 지낸 손시(孫時)이다. 어려서는 문학에 재능을 보였고 점점 자라면서 국방에 관심을 가졌다. 1618년(광해군 10)에 무과에 21세의 나이로 급제했다. 광해군 때에 폐모론이 일어나자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를 지으며 노모를 봉양했다. 인조반정 후에 선전관(宣傳官)에 제수되었고 후에 현감(縣監)에 이르렀다. 병자호란이 일어나 서울이 포위되었다는 사실을 듣고 가솔을 이끌고 의병을 일으켜 전쟁에 참가한다. 쌍령(雙領)을 넘을 때에 적을 만나 전투중에 죽었다. 한 노비가 끝까지 함께 싸우다 죽었다고 전한다. 사후 훈련도정(訓練都正)에 증직되었다.
병자호란 때의 의병장이다. 본관은 경주(慶州), 부친은 관판관(官判官)을 지낸 손시(孫時)이다. 어려서는 문학에 재능을 보였고 점점 자라면서 국방에 관심을 가졌다. 1618년(광해군 10)에 무과에 21세의 나이로 급제했다. 광해군 때에 폐모론이 일어나자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를 지으며 노모를 봉양했다. 인조반정 후에 선전관(宣傳官)에 제수되었고 후에 현감(縣監)에 이르렀다. 병자호란이 일어나 서울이 포위되었다는 사실을 듣고 가솔을 이끌고 의병을 일으켜 전쟁에 참가한다. 쌍령(雙領)을 넘을 때에 적을 만나 전투중에 죽었다. 한 노비가 끝까지 함께 싸우다 죽었다고 전한다. 사후 훈련도정(訓練都正)에 증직되었다.
[참고문헌]
樊巖集
[집필자]
홍현성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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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31 | 2008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