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지(愼安之)
[상세내용]
신안지(愼安之)
생졸년 미상. 본관은 거창(居昌).
고려 문종(文宗) 때 사신으로 왔다가 귀화한 송(宋)나라 개봉부(開封府) 사람 진사(進士) 신수(愼修)의 아들이다.
신수는 1075년(고려 문종 29) 벼슬이 시어사(侍御史)가 되고, 숙종(肅宗) 때에는 우복야(右僕射)‧참지정사(參知政事)에 이르렀으며 거창신씨 시조가 되었다.
신안지(愼安之)는 고려 조 예종(睿宗)‧인종(仁宗) 두 임금을 섬겼으며 벼슬이 지수주사(知水州事)가 되어 정사에 청숙(淸肅)하여 관리와 백성들이 그를 존경하였다. 그 후 병부상서(兵部尙書)‧삼사사(三司使)‧판합문사(判閤門事)를 거쳐 인종의 사부(師傅)를 역임하였다.
『고려사(高麗史)』에 따르면, "용모가 준수하고 성품이 관대하며 일을 처리하는 데 청렴하고 공평하게 하였다. 특히 의술이 유명하고 한어(漢語)를 잘 알았으므로 남조(南朝-송나라)와 북조(北朝-요나라)에 보내는 외교 문서의 대부분이 그의 손에서 작성되었다."고 한다.
고려 문종(文宗) 때 사신으로 왔다가 귀화한 송(宋)나라 개봉부(開封府) 사람 진사(進士) 신수(愼修)의 아들이다.
신수는 1075년(고려 문종 29) 벼슬이 시어사(侍御史)가 되고, 숙종(肅宗) 때에는 우복야(右僕射)‧참지정사(參知政事)에 이르렀으며 거창신씨 시조가 되었다.
신안지(愼安之)는 고려 조 예종(睿宗)‧인종(仁宗) 두 임금을 섬겼으며 벼슬이 지수주사(知水州事)가 되어 정사에 청숙(淸肅)하여 관리와 백성들이 그를 존경하였다. 그 후 병부상서(兵部尙書)‧삼사사(三司使)‧판합문사(判閤門事)를 거쳐 인종의 사부(師傅)를 역임하였다.
『고려사(高麗史)』에 따르면, "용모가 준수하고 성품이 관대하며 일을 처리하는 데 청렴하고 공평하게 하였다. 특히 의술이 유명하고 한어(漢語)를 잘 알았으므로 남조(南朝-송나라)와 북조(北朝-요나라)에 보내는 외교 문서의 대부분이 그의 손에서 작성되었다."고 한다.
[참고문헌]
高麗史
居昌愼氏世譜
朝鮮人名辭書
韓國人名大辭典
居昌愼氏世譜
朝鮮人名辭書
韓國人名大辭典
[집필자]
김동섭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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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31 | 2008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2013-08-08 | "『고려사(高麗史)』와 『거창신씨세보(居昌愼氏世譜)』에 따르면, 용모가 준수하고 ..."를 "『고려사(高麗史)』에 따르면 용모가 준수하고 ..."로 고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