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현(禪顯)
[상세내용]
선현(禪顯)
생졸년 미상.
신돈(辛旽)은 자신이 국정을 집권하던 1365년부터 1371년 사이에 불교계까지 장악하였다. 이때 신돈은 선현(禪顯)을 왕사(王師)로 책봉하여 주었다. 공민왕(恭愍王)이 친히 강안전(康安殿)으로 맞아들여 구의(摳衣)의 예로 정성껏 대해주었다. 이때 사관(史官) 윤소종(尹紹宗: 1345∼1393)이 신돈(辛旽)이 나라를 망칠 것이라며 가까이 하지 말 것을 권유하였다. 이에 앞서 윤소종의 집안에는 부일(夫目)이라는 승려가 있었는데, 윤소정에게 일러 말하기를 신돈의 탐욕스럽고 포악스러움은 개‧돼지보다 심하니, 반드시 국가를 그르칠 것인데, 선현이 신돈에게 아부하며 따르는 것을 차마 볼 수가 없다고 말하고는 마침내 도망가서 산으로 들어가 버렸다. 『동사강목(東史綱目)』 「정미년(丁未年) 공민왕 16년(원 순제 지정 27, 1367)」에는 “8월 중 천희(千禧)를 국사(國師)로 삼고, 선현을 왕사(王師)로 삼았다. 두 중은 모두 신돈이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이다. 왕은 아홉 번 절을 했는데 선현은 선 채로 받았다.”는 내용이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선현은 왕 앞에서도 신돈의 세력만을 믿고 오만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신돈(辛旽)은 자신이 국정을 집권하던 1365년부터 1371년 사이에 불교계까지 장악하였다. 이때 신돈은 선현(禪顯)을 왕사(王師)로 책봉하여 주었다. 공민왕(恭愍王)이 친히 강안전(康安殿)으로 맞아들여 구의(摳衣)의 예로 정성껏 대해주었다. 이때 사관(史官) 윤소종(尹紹宗: 1345∼1393)이 신돈(辛旽)이 나라를 망칠 것이라며 가까이 하지 말 것을 권유하였다. 이에 앞서 윤소종의 집안에는 부일(夫目)이라는 승려가 있었는데, 윤소정에게 일러 말하기를 신돈의 탐욕스럽고 포악스러움은 개‧돼지보다 심하니, 반드시 국가를 그르칠 것인데, 선현이 신돈에게 아부하며 따르는 것을 차마 볼 수가 없다고 말하고는 마침내 도망가서 산으로 들어가 버렸다. 『동사강목(東史綱目)』 「정미년(丁未年) 공민왕 16년(원 순제 지정 27, 1367)」에는 “8월 중 천희(千禧)를 국사(國師)로 삼고, 선현을 왕사(王師)로 삼았다. 두 중은 모두 신돈이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이다. 왕은 아홉 번 절을 했는데 선현은 선 채로 받았다.”는 내용이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선현은 왕 앞에서도 신돈의 세력만을 믿고 오만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高麗史 東史綱目 朝鮮人名辭書
[집필자]
이은영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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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31 | 2008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