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련(朴連)
[상세내용]
박련(朴連)
생졸년 미상. 본관은 고령(高靈).
고령박씨(高靈朴氏) 시조 박언성(朴彦成)은 박혁거세(朴赫居世)의 29세손인 경명왕(景明王)의 둘째 아들 고양대군(高陽大君)이며, 후대에 3파가 형성되는데 어사(御史) 박섬(朴暹)‧부창정(副倉正) 박환(朴還)과 함께 주부(主簿) 박련(朴連)이 1파를 이루었다. 1303년(고려 충렬왕 29)에 문과에서 장원급제하였다. 1331년 전리판서(典理判書)가 되었다. 1331년 6월 상호군이었던 박련은 충혜왕(忠惠王)에게 유사(有司)의 인사행정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말을 올리자, 충혜왕이 사건의 전말을 검토한 후에 당시 인사행정을 맡았던 밀직사(密直使) 김문귀(金文貴) 등을 장형을 내리고 유배 시킨 일이 있었다. 1332년 2월 충숙왕(忠肅王)이 재위에 오른 후에 박련 등 13인을 전왕에게 아첨하여 사랑을 받은 인물이라 하여 순군옥(巡軍獄)에 가두었다가 같은 해 5월에 옥사에서 풀어주었다.
고령박씨(高靈朴氏) 시조 박언성(朴彦成)은 박혁거세(朴赫居世)의 29세손인 경명왕(景明王)의 둘째 아들 고양대군(高陽大君)이며, 후대에 3파가 형성되는데 어사(御史) 박섬(朴暹)‧부창정(副倉正) 박환(朴還)과 함께 주부(主簿) 박련(朴連)이 1파를 이루었다. 1303년(고려 충렬왕 29)에 문과에서 장원급제하였다. 1331년 전리판서(典理判書)가 되었다. 1331년 6월 상호군이었던 박련은 충혜왕(忠惠王)에게 유사(有司)의 인사행정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말을 올리자, 충혜왕이 사건의 전말을 검토한 후에 당시 인사행정을 맡았던 밀직사(密直使) 김문귀(金文貴) 등을 장형을 내리고 유배 시킨 일이 있었다. 1332년 2월 충숙왕(忠肅王)이 재위에 오른 후에 박련 등 13인을 전왕에게 아첨하여 사랑을 받은 인물이라 하여 순군옥(巡軍獄)에 가두었다가 같은 해 5월에 옥사에서 풀어주었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東史綱目
朝鮮人名辭書
高麗史節要
東史綱目
朝鮮人名辭書
[집필자]
이은영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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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31 | 2008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