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천(辛斯蕆)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3C2E0C0ACCC9CD1382X0 |
| 호(號) | 곡강(曲江) |
| 생년 | ?(미상) |
| 졸년 | 1382(우왕 8) |
| 시대 | 고려후기 |
| 본관 | 영산(靈山) |
| 활동분야 | 충신/의열인 |


[상세내용]
신사천(辛斯蕆)
미상~1382년(우왕 8). 고려 후기 충신‧의열인. 호는 곡강(曲江)이다. 조부는 중정대부(中正大夫) 신성열(辛成烈)이다.
고려 조에 벼슬이 봉익대부(奉翊大夫) 전공판서(典公判書)에 이르렀다. 만년에 벼슬을 버리고 낙동강 유역의 곡강(曲江)에서 퇴거생활을 하던 중 1382년(우왕 8) 왜적의 침입에 맞서 싸우다가 낙동강 멸포(蔑浦)에서 적에게 붙잡혔고, 항복을 거부하다가 끝내 순국하였다. 이때 16세의 딸 또한 절개를 지키다가 목숨을 잃었다. 1405년(태종 5) 이 일이 전법판서 조준(趙浚)에 의해 알려지면서 삼강정려비가 내려져 정려(旌閭)되었다. 또 1701년(숙종 27)에 도천서원(道泉書院)이 사액되었다.
슬하에 판안변부사(判安邊府事) 신열(辛悅) 등 6남 2녀를 두었다.
고려 조에 벼슬이 봉익대부(奉翊大夫) 전공판서(典公判書)에 이르렀다. 만년에 벼슬을 버리고 낙동강 유역의 곡강(曲江)에서 퇴거생활을 하던 중 1382년(우왕 8) 왜적의 침입에 맞서 싸우다가 낙동강 멸포(蔑浦)에서 적에게 붙잡혔고, 항복을 거부하다가 끝내 순국하였다. 이때 16세의 딸 또한 절개를 지키다가 목숨을 잃었다. 1405년(태종 5) 이 일이 전법판서 조준(趙浚)에 의해 알려지면서 삼강정려비가 내려져 정려(旌閭)되었다. 또 1701년(숙종 27)에 도천서원(道泉書院)이 사액되었다.
슬하에 판안변부사(判安邊府事) 신열(辛悅) 등 6남 2녀를 두었다.
[참고문헌]
여지도서
고려사 열전 孝友
태종 실록
세종실록(1년, 1418)
삼강행실록
영산영월합보(靈山寧越辛氏合譜)
고려사 열전 孝友
태종 실록
세종실록(1년, 1418)
삼강행실록
영산영월합보(靈山寧越辛氏合譜)
[집필자]
이지은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