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李午)
[상세내용]
이오(李午)
생졸년 미상. 고려 후기 문신. 호는 모은(茅隱)다. 본관은 재령(載寧)이고, 출신지는 경상남도 함안(咸安)이다.
부친은 이일선(李日善)이다.
어려서부터 정몽주(鄭夢周)와 이색(李穡)의 문하에서 수학하며 의리(義理)의 학문에 전념하여 사람들로부터 추앙을 받았다.
공양왕 때 성균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그러나 나라가 망해가는 것을 보고 더 이상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살았다. 그러다가 조선이 건국되고 고려가 망하자 당대의 뛰어난 선비들과 함께 송도(松都) 밖의 두문동(杜門洞)으로 들어가서 고려의 신하로서 의리를 지킬 뜻을 드러낸 후 경상남도 함안군(咸安郡)으로 내려가 은거생활을 하였다.
후에 조선의 태종이 수차례 불렀으나 끝내 나아가지 않았으며, 후손들에도 조선왕조에서 관직에 나아가지 말 것을 유언으로 남기고 죽었다.
현재 경상남도 함안에는 고려동학비‧고려종택‧율간정(栗澗亭)‧자미정(紫薇亭)‧자미단(紫薇壇)‧복정(鰒亭) 등의 고려동유적지가 남아 있다.
부친은 이일선(李日善)이다.
어려서부터 정몽주(鄭夢周)와 이색(李穡)의 문하에서 수학하며 의리(義理)의 학문에 전념하여 사람들로부터 추앙을 받았다.
공양왕 때 성균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그러나 나라가 망해가는 것을 보고 더 이상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살았다. 그러다가 조선이 건국되고 고려가 망하자 당대의 뛰어난 선비들과 함께 송도(松都) 밖의 두문동(杜門洞)으로 들어가서 고려의 신하로서 의리를 지킬 뜻을 드러낸 후 경상남도 함안군(咸安郡)으로 내려가 은거생활을 하였다.
후에 조선의 태종이 수차례 불렀으나 끝내 나아가지 않았으며, 후손들에도 조선왕조에서 관직에 나아가지 말 것을 유언으로 남기고 죽었다.
현재 경상남도 함안에는 고려동학비‧고려종택‧율간정(栗澗亭)‧자미정(紫薇亭)‧자미단(紫薇壇)‧복정(鰒亭) 등의 고려동유적지가 남아 있다.
[참고문헌]
[집필자]
신상범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