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金濟)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AE40C81CFFFFU9999X0 |
이명(異名) | 김제해(金齊海) |
호(號) | 백암(白巖) |
시호(諡號) | 충개(忠介) |
생년 | ?(미상) |
졸년 | ?(미상) |
시대 | 고려후기 |
본관 | 선산(善山) |
활동분야 | 충효열 > 충신 |
[상세내용]
김제(金濟)
생졸년 미상. 본관은 선산(善山), 호는 백암(白巖). 아버지는 김원로(金元老)이다. 김주(金澍)의 형이다.
고려 조에서 평해지군(平海知郡)으로 있다가 조선이 건국되자 이름을 제해(齊海)라 바꾸었다. 그리고 어느날 벽에 시 한 수를 써놓고 바다로 떠나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 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동해의 저 배야 노중련의 나루터가 어디냐. 오백년 고려조의 한 사람 신하로다. 외로운 나의 영혼 죽지 않고 있다면 붉은 해 따라 단심을 비추고 싶구려.” 이조참의에 추증되었고, 정조(正祖)는 김제와 김주의 충절을 백이.숙제에 비유하면서 바다에 단을 세워 초혼제를 치르게 하였으며, 안동의 고죽서원(孤竹書院)에 배향하였다. 1798년(정조 22) 9월 7일에 조정에서 충개(忠介)라는 시호를 내렸다.
고려 조에서 평해지군(平海知郡)으로 있다가 조선이 건국되자 이름을 제해(齊海)라 바꾸었다. 그리고 어느날 벽에 시 한 수를 써놓고 바다로 떠나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 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동해의 저 배야 노중련의 나루터가 어디냐. 오백년 고려조의 한 사람 신하로다. 외로운 나의 영혼 죽지 않고 있다면 붉은 해 따라 단심을 비추고 싶구려.” 이조참의에 추증되었고, 정조(正祖)는 김제와 김주의 충절을 백이.숙제에 비유하면서 바다에 단을 세워 초혼제를 치르게 하였으며, 안동의 고죽서원(孤竹書院)에 배향하였다. 1798년(정조 22) 9월 7일에 조정에서 충개(忠介)라는 시호를 내렸다.
[참고문헌]
朝鮮王朝實錄
嶺南人物考
기년편고
울진군지
嶺南人物考
기년편고
울진군지
[이미지]
[집필자]
심량근
수정일 | 수정내역 |
---|---|
2008-12-31 | 2008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