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천단(河千旦)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D558CC9CB2E8D1259X0 |
개명(改名) | 하천조(河千朝) |
생년 | ?(미상) |
졸년 | 1259(고종 46) |
시대 | 고려후기 |
본관 | 안음(安陰) |
활동분야 | 관료 > 관인 |
[상세내용]
하천단(河千旦)
미상∼1259년(고종 46). 고려의 관인. 이명은 하천조(河千朝)(주1)
. 본관은 안음(安陰)(주2)
.
이안현(利安縣) 사람이다.
문장에 능하여 당시의 표(表)와 전(箋)이 모두 그의 손에서 나왔다고 한다.
만년에는 불경을 좋아 하였고, 고종이 일찍이 몽고의 침입을 피하여 대사동(大寺洞)에 이어(移御)하고자 할 때 지형이 좋지 않다고 하여 중지시켰다.
1254년(고종 41) 비서감으로 국자감시를 주관하여 시(詩)‧부(賦)로 이소(李邵) 등 33인을 뽑았다.
이때 고원(誥院)에 함께 있던 최온(崔昷)이 문명을 시기하여 가볍게 대하였으나 굴하지 않았으며, 이규보(李奎報)‧최자(崔滋)‧김구(金坵)‧이백순(李百順) 등과 함께 당시의 문단을 휩쓸었다.
특히, 외교문서에 능하였다. 판위위사(判衛尉事)로 죽었다.
이명 |
태조 이성계의 이름[旦]을 피휘(避諱)하기 위해서 자료에 따라서 하천조(河千朝)로 기록되어 있음. 신편 대동운옥(新編大東韻玉), 증보문헌비고 등. |
본관 |
고려사를 참고하여 본관을 함창(咸昌)에서 안음(安陰)으로 수정함. 고려사 열전에 "利安縣人"으로 기록되어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안음현의 고명이 이안현이다. |
이안현(利安縣) 사람이다.
문장에 능하여 당시의 표(表)와 전(箋)이 모두 그의 손에서 나왔다고 한다.
만년에는 불경을 좋아 하였고, 고종이 일찍이 몽고의 침입을 피하여 대사동(大寺洞)에 이어(移御)하고자 할 때 지형이 좋지 않다고 하여 중지시켰다.
1254년(고종 41) 비서감으로 국자감시를 주관하여 시(詩)‧부(賦)로 이소(李邵) 등 33인을 뽑았다.
이때 고원(誥院)에 함께 있던 최온(崔昷)이 문명을 시기하여 가볍게 대하였으나 굴하지 않았으며, 이규보(李奎報)‧최자(崔滋)‧김구(金坵)‧이백순(李百順) 등과 함께 당시의 문단을 휩쓸었다.
특히, 외교문서에 능하였다. 판위위사(判衛尉事)로 죽었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高麗史節要
[집필자]
진성규(秦星圭)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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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