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옹(崔雍)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CD5CC639FFFFD1292X0 |
이명(異名) | 최기(崔夔) |
자(字) | 대화(大和) |
생년 | ?(미상) |
졸년 | 1292(충렬왕 18) |
시대 | 고려후기 |
본관 | 동주(東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증조부 | 최유청(崔惟淸) |
[상세내용]
최옹(崔雍)
미상∼1292년(충렬왕 18).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동주(東州). 초명은 기(夔), 자는 대화(大和).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 유청(惟淸)의 증손이며, 영(瑩)의 할아버지이다.
집안이 대대로 문학으로 알려진 명문출신으로 성품이 근후하고 말이 적었다. 젊어서 학문을 즐기어 동지 10인과 함께 10년간 독서하기로 약속하였는데, 몇 년이 못 되어 다른 사람은 모두 포기하고 갔으나 그는 홀로 힘써 배워서 읽지 않은 책이 없어, 당시 박학으로 일컬어졌다.
고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대관승(大官丞)을 거쳐 전리좌랑(典理佐郞)이 되었으며, 충렬왕은 태손(太孫) 때부터 맞이하여 사부(師傅)로 삼았는데 즉위함에 따라 국자사업(國子司業)을 지내며 『통감(通鑑)』을 강론하였다.
이어 국학전주(國學典酒)‧세자궁령(世子宮令)을 거쳐 1292년(충렬왕 18) 부지밀직사사 문한학사(副知密直司事文翰學士)에 올라 치사(致仕)하였다.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 유청(惟淸)의 증손이며, 영(瑩)의 할아버지이다.
집안이 대대로 문학으로 알려진 명문출신으로 성품이 근후하고 말이 적었다. 젊어서 학문을 즐기어 동지 10인과 함께 10년간 독서하기로 약속하였는데, 몇 년이 못 되어 다른 사람은 모두 포기하고 갔으나 그는 홀로 힘써 배워서 읽지 않은 책이 없어, 당시 박학으로 일컬어졌다.
고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대관승(大官丞)을 거쳐 전리좌랑(典理佐郞)이 되었으며, 충렬왕은 태손(太孫) 때부터 맞이하여 사부(師傅)로 삼았는데 즉위함에 따라 국자사업(國子司業)을 지내며 『통감(通鑑)』을 강론하였다.
이어 국학전주(國學典酒)‧세자궁령(世子宮令)을 거쳐 1292년(충렬왕 18) 부지밀직사사 문한학사(副知密直司事文翰學士)에 올라 치사(致仕)하였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高麗史節要
[집필자]
나만수(羅滿洙)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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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