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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도(全以道)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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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미상)
졸년?(미상)
시대고려후기
본관정선(旌善)
활동분야정치 > 정치가
공신호호종1등공신(扈從一等功臣)
공신호수복경성2등공신(收復京城二等功臣)

[상세내용]

전이도(全以道)
생졸년 미상. 고려 후기의 정치가. 본관은 정선(旌善).

공민왕을 따라 원나라에 들어가 숙위하였다가 왕의 즉위로 귀국하여 낭장에 임명되고, 1352년(공민왕 1) 시종한 공으로 1등공신에 올랐다.

1355년 의성창사(義城倉使)로 있을 때 왕이 광명사(廣明寺)에 행차하여 승(僧)을 공양하는 데 능히 일을 처리하지 못하여 파직되었다가 곧 복직되었다.

1359년 흉년이 크게 들자 예부시랑으로 있으면서 경상도진제사(慶尙道賑濟使)로 파견되었는데, 돌아와서 지방수령직에 서리(胥吏)들이 다수 임용됨으로써 많은 폐단을 저지른다고 파악하고, 과거에 합격한 사류(士流)만으로 수령에 충당할 것을 청하였으나 채택되지 못하였다.

판전농시사(判典農寺事)를 지낸 뒤 홍건적의 침입으로 복주(福州: 지금의 안동)로 파천(播遷)한 공민왕을 호종(扈從)하였다.

이때 왕명을 받아 홍주도(洪州道)에서 군사를 점검하였고, 1363년에는 호종1등공신(扈從一等功臣)과 수복경성2등공신(收復京城二等功臣)에 봉하여졌다.

한편, 공민왕을 반대하던 최유(崔濡)원나라에서 음모를 꾸며 왕을 폐하고 덕흥군(德興君)을 세워 요양(遼陽)의 군사를 이끌고 고려를 쳐들어온다는 소식이 전하여지자 이에 대비하기 위하여 안동도병마사로 임명되어 출동하였다.

1364년 여진족의 삼선(三善)삼개(三介)의 무리들이 동북면에 침입하자 지병마사(知兵馬事)로 임명되어 도지휘사(都指揮使) 한방신(韓方信)을 보내어, 특히 삼관(三關)홀면(忽面)방면을 방어하도록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집필자]

이희덕(李熙德)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