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목(李淳牧)
[상세내용]
이순목(李淳牧)
미상∼1249년(고종 36). 고려 무신집권기의 문신. 본관은 합천(陜川).
원종 때 판사를 지낸 이신손(李信孫)‧이의손(李義孫)과 충렬왕 때 간신으로 재상에 오른 이덕손(李德孫)의 아버지이다.
합주의 이속(吏屬)으로서 어려서부터 학문에 뜻을 두었으며, 특히 글짓기를 잘하였다. 일찍이 아버지를 따라 개경에 가서 문회(文會)에서마다 주필(走筆)로 이름을 떨쳤다.
1212년(강종 1) 문과에 급제하여 금성관기(錦城管記)에 보임되었으며, 곧 직한림원(直翰林院)으로 옮겼다가 첨사부주부(詹事府注簿)가 되었다.
이때 술승(術僧) 주연지(周演之)와 가깝게 지냈는데, 1227년(고종 14) 주연지가 최우(崔瑀)에 의하여 죽음을 당하면서 금구현령으로 좌천되었다.
그러나 최우가 그 재주를 아깝게 여겨 임기가 끝나기 전에 불러들여 보문각대제(寶文閣待制)에 임명하였고, 다시 판비서성사(判祕書省事)로 승진하였으며 줄곧 지제고(知制誥)를 겸임하였다.
최항(崔沆)이 집권하자 어릴 때 그의 사부로 있었던 관계로 1249년 상서좌복야에 임명되었으나, 미처 제수받기 전에 죽었다.
원종 때 판사를 지낸 이신손(李信孫)‧이의손(李義孫)과 충렬왕 때 간신으로 재상에 오른 이덕손(李德孫)의 아버지이다.
합주의 이속(吏屬)으로서 어려서부터 학문에 뜻을 두었으며, 특히 글짓기를 잘하였다. 일찍이 아버지를 따라 개경에 가서 문회(文會)에서마다 주필(走筆)로 이름을 떨쳤다.
1212년(강종 1) 문과에 급제하여 금성관기(錦城管記)에 보임되었으며, 곧 직한림원(直翰林院)으로 옮겼다가 첨사부주부(詹事府注簿)가 되었다.
이때 술승(術僧) 주연지(周演之)와 가깝게 지냈는데, 1227년(고종 14) 주연지가 최우(崔瑀)에 의하여 죽음을 당하면서 금구현령으로 좌천되었다.
그러나 최우가 그 재주를 아깝게 여겨 임기가 끝나기 전에 불러들여 보문각대제(寶文閣待制)에 임명하였고, 다시 판비서성사(判祕書省事)로 승진하였으며 줄곧 지제고(知制誥)를 겸임하였다.
최항(崔沆)이 집권하자 어릴 때 그의 사부로 있었던 관계로 1249년 상서좌복야에 임명되었으나, 미처 제수받기 전에 죽었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高麗史節要
[집필자]
이익주(李益柱)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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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