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원(金士元){1}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E40C0ACC6D0D1319X0 |
시호(諡號) | 경정(景貞) |
생년 | ?(미상) |
졸년 | 1319(충숙왕 6) |
시대 | 고려후기 |
본관 | 광산(光山)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상세내용]
김사원(金士元)
미상∼1319년(충숙왕 6). 고려시대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1310년(충선왕 2) 6월 권신(權臣)인 태안부원군(泰安府院君) 이대순(李大順)의 부인 위씨(韋氏)가 영평궁(永平宮)과 노비문제로 다투게 되었을 때 언부전서(讞部典書)로서 산랑(散郞) 이광시(李光時)와 함께 그 안건을 주관하여 위씨에게 노비를 주지 않았다. 이에 이대순이 모함하여 장형(杖刑)에 처하고 귀양가게 하였다.
1311년 평양윤(平壤尹)이 되었으며, 12월에는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에 올랐다.
1316년(충숙왕 3) 4월에 상의회의도감사(商議會議都監事)가 되고 뒤에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가 되었다. 시호는 경정(景貞)이다.
1310년(충선왕 2) 6월 권신(權臣)인 태안부원군(泰安府院君) 이대순(李大順)의 부인 위씨(韋氏)가 영평궁(永平宮)과 노비문제로 다투게 되었을 때 언부전서(讞部典書)로서 산랑(散郞) 이광시(李光時)와 함께 그 안건을 주관하여 위씨에게 노비를 주지 않았다. 이에 이대순이 모함하여 장형(杖刑)에 처하고 귀양가게 하였다.
1311년 평양윤(平壤尹)이 되었으며, 12월에는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에 올랐다.
1316년(충숙왕 3) 4월에 상의회의도감사(商議會議都監事)가 되고 뒤에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가 되었다. 시호는 경정(景貞)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高麗史節要
[집필자]
박천식(朴天植)
대표명 | 김사원(金士元){1} |
성명 | 김사원(金士元) |
성명 : "김사원(金士元)"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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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