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득제(金得齊)
[상세내용]
김득제(金得齊)
1347년(충목왕 3)에 관직에 나아가 주로 무관으로 활약하였다.
1361년(공민왕 10) 홍건적이 20만 대군으로 침입하여 개경을 함락하자 복주(福州: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로 피난하게 되었는데, 이때 대장군으로 왕을 호종하였으며, 그뒤 개경을 수복하는 데 공이 컸다.
그때, 형 김득배가 안우(安祐)‧이방실(李芳實)과 함께 간신 김용(金鏞)의 모함으로 사형을 당하자 이에 연좌되어 화산(花山)으로 유배되었다.
1363년 김용이 축출되자 다시 소환되어 홍건적 격퇴의 공을 인정받아 황상(黃裳)‧한방신(韓方信)‧최영(崔瑩)과 함께 일등공신으로 녹훈되었다.
1376년(우왕 2) 9월에 의주원수가 되었으며, 다음해 9월에 왜구가 영광‧장사‧모평‧함풍에 침입하여 해주‧평주에까지 이르자 최영 등과 함께 이를 격퇴하였다.
그뒤 삼사우사(三司右使)가 되었으며, 또 왜구가 밀양‧영산에 침입하자 조전원수(助戰元帥)로서 이성계(李成桂)‧이림(李琳) 등과 함께 우인열(禹仁烈)을 도와 이를 격퇴하였다.
1361년(공민왕 10) 홍건적이 20만 대군으로 침입하여 개경을 함락하자 복주(福州: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로 피난하게 되었는데, 이때 대장군으로 왕을 호종하였으며, 그뒤 개경을 수복하는 데 공이 컸다.
그때, 형 김득배가 안우(安祐)‧이방실(李芳實)과 함께 간신 김용(金鏞)의 모함으로 사형을 당하자 이에 연좌되어 화산(花山)으로 유배되었다.
1363년 김용이 축출되자 다시 소환되어 홍건적 격퇴의 공을 인정받아 황상(黃裳)‧한방신(韓方信)‧최영(崔瑩)과 함께 일등공신으로 녹훈되었다.
1376년(우왕 2) 9월에 의주원수가 되었으며, 다음해 9월에 왜구가 영광‧장사‧모평‧함풍에 침입하여 해주‧평주에까지 이르자 최영 등과 함께 이를 격퇴하였다.
그뒤 삼사우사(三司右使)가 되었으며, 또 왜구가 밀양‧영산에 침입하자 조전원수(助戰元帥)로서 이성계(李成桂)‧이림(李琳) 등과 함께 우인열(禹仁烈)을 도와 이를 격퇴하였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高麗史節要
[집필자]
신천식(申千湜)
대표명 | 김득제(金得齊) |
명 | 득제(得齊) |
봉호 | 상산군(商山君), 상산군득제(商山君得齊) |
명 : "득제(得齊)"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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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