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계(李元桂)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74C6D0ACC4B1330X0 |
생년 | 1330(충숙왕 17) |
졸년 | ?(미상) |
시대 | 고려후기 |
본관 | 전주(全州) |
활동분야 | 무신 > 무신 |
부 | 이자춘(李子春) |
공신호 | 회군공신 |
[상세내용]
이원계(李元桂)
1330년(충숙왕 17)∼미상. 고려 말기의 무신. 본관은 전주(全州).
고려의 삭방도만호 겸 동북면병마사 이자춘(李子春: 桓祖)의 아들로 조선 태조의 이복 형이다.
공민왕 때에 두 차례에 걸친 홍건적의 침입을 격퇴하여 공을 세우고 2등공신에 책록되었는데, 특히 2차침입 때는 조천주(趙天柱) 등과 함께 안우(安祐)의 휘하에 종군하여 홍건적을 격퇴하고 개경을 수복하는 데 공을 세웠다.
1376년(우왕 2) 원제(元帝)가 고려국왕으로 임명한 심왕탈탈불화(瀋王脫脫不花)가 입국한다는 보고에 따라 국경방비를 강화할 때 동지밀직(同知密直)이었던 그는 원수가 되어 서북방어의 임무를 담당하였다.
이어 이듬해에는 나세(羅世)의 휘하로 종군, 강화에서 왜구를 격퇴하고 1380년에 왜구가 또다시 광주와 능성‧화순 두 현(縣)을 침범하자 최공철(崔公哲)과 함께 전라도 방어의 임무를 맡았다. 그해 황산싸움에서 이성계(李成桂)를 도와 왜구를 격퇴하는 데 공을 세웠으며, 1388년 요동정벌 때에는 우군도통사 이성계의 휘하에서 조전원수(助戰元帥)로 출전하여 1390년(공양왕 2) 회군공신에 책록되었다.
고려의 삭방도만호 겸 동북면병마사 이자춘(李子春: 桓祖)의 아들로 조선 태조의 이복 형이다.
공민왕 때에 두 차례에 걸친 홍건적의 침입을 격퇴하여 공을 세우고 2등공신에 책록되었는데, 특히 2차침입 때는 조천주(趙天柱) 등과 함께 안우(安祐)의 휘하에 종군하여 홍건적을 격퇴하고 개경을 수복하는 데 공을 세웠다.
1376년(우왕 2) 원제(元帝)가 고려국왕으로 임명한 심왕탈탈불화(瀋王脫脫不花)가 입국한다는 보고에 따라 국경방비를 강화할 때 동지밀직(同知密直)이었던 그는 원수가 되어 서북방어의 임무를 담당하였다.
이어 이듬해에는 나세(羅世)의 휘하로 종군, 강화에서 왜구를 격퇴하고 1380년에 왜구가 또다시 광주와 능성‧화순 두 현(縣)을 침범하자 최공철(崔公哲)과 함께 전라도 방어의 임무를 맡았다. 그해 황산싸움에서 이성계(李成桂)를 도와 왜구를 격퇴하는 데 공을 세웠으며, 1388년 요동정벌 때에는 우군도통사 이성계의 휘하에서 조전원수(助戰元帥)로 출전하여 1390년(공양왕 2) 회군공신에 책록되었다.
[참고문헌]
高麗史
太祖實錄
璿源系譜
太祖實錄
璿源系譜
[집필자]
문수홍(文守弘)
대표명 | 이원계(李元桂) |
명 | 원계(元桂) |
봉호 | 완산군원계(完山君元桂), 완풍군(完豊君), 완풍군원계(完豐君元桂) |
시호 | 양평(襄平) |
명 : "원계(元桂)"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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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