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덕태후(明德太后)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24BA85B355D0DCB1298X0 |
이명(異名) | 덕비(德妃) |
시호(諡號) | 공원(恭元) |
생년 | 1298(충렬왕 24) |
졸년 | 1380(우왕 6) |
시대 | 고려후기 |
본관 | 남양(南陽[唐]) |
활동분야 | 왕실 > 비빈 |
부 | 홍규(洪奎) |
[상세내용]
명덕태후(明德太后)
1298년(충렬왕 24)∼1380년(우왕 6). 고려 충숙왕의 비. 성은 홍씨(洪氏). 본관은 남양(南陽[唐]).
부친은 부원군(府院君) 홍규(洪奎)이다. 왕으로 즉위하자 덕비(德妃)라 하였으며, 충혜왕과 공민왕을 낳았다.
1311년(충숙왕 3) 왕이 원나라의 복국장공주(濮國長公主)를 맞아들이자, 공주가 태후를 투기하므로 정안공(定安公)의 집으로 옮겨 거처하였다. 일찍이 부(府)를 세워 덕경(德慶)이라 하였는데, 공민왕이 즉위한 뒤 문예(文睿)로 바꾸고 대비(大妃)로 삼았다.
그러나 뒤에 문예를 숭경(崇敬)으로 다시 고쳤다. 공민왕이 죽고 우왕이 10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항상 곁에서 국정을 보살폈다.
죽은 뒤에는 영릉(令陵)에 장사지냈으며, 시호는 공원(恭元)이라 하였다.
부친은 부원군(府院君) 홍규(洪奎)이다. 왕으로 즉위하자 덕비(德妃)라 하였으며, 충혜왕과 공민왕을 낳았다.
1311년(충숙왕 3) 왕이 원나라의 복국장공주(濮國長公主)를 맞아들이자, 공주가 태후를 투기하므로 정안공(定安公)의 집으로 옮겨 거처하였다. 일찍이 부(府)를 세워 덕경(德慶)이라 하였는데, 공민왕이 즉위한 뒤 문예(文睿)로 바꾸고 대비(大妃)로 삼았다.
그러나 뒤에 문예를 숭경(崇敬)으로 다시 고쳤다. 공민왕이 죽고 우왕이 10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항상 곁에서 국정을 보살폈다.
죽은 뒤에는 영릉(令陵)에 장사지냈으며, 시호는 공원(恭元)이라 하였다.
[참고문헌]
高麗史
[집필자]
이상선(李相瑄)
대표명 | 명덕태후(明德太后) |
묘호 | 명덕태후(明德太后), 명덕태후홍씨(明德太后洪氏) |
묘호 : "명덕태후(明德太后)"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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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