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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숙(金之淑)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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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호(諡號)광절(光節)
생년1238(고종 25)
졸년1310(충선왕 2)
시대고려후기
본관광산(光山)
활동분야문신 > 문신
김연(金鍊)
출신지화평(化平: 지금의 光州)

[상세내용]

김지숙(金之淑)
1238년(고종 25)∼1310년(충선왕 2). 고려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화평(化平: 지금의 光州) 출신.

참지정사(參知政事) 김연(金鍊)의 아들이다. 김인근(金仁瑾)김인연(金仁沇)의 두 아들과 두 딸이 있었는데, 가세가 어려워 두 딸은 여승이 되었다.

원종장군이 되어 강화도에서 난을 일으킨 삼별초를 토벌하다가 포위되어 탈출할 방법이 없자 바다로 뛰어들어 파도를 따라 표류하다가 끝내 붙들려 진도로 압송되었다.

마침 승화후(承化侯) 왕온(王溫)의 주선으로 겨우 죽음을 면하고 뒤에 탈출하여 적의 정세를 관군에게 알림으로써 결국 삼별초를 토벌하게 되었다.

이 공로로 부지밀직사사(副知密直司事)에 올랐으며, 1290년(충렬왕 16)에 전라도도지휘사(全羅道都指揮使)를 거쳐 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가 되었다.

그뒤 판삼사사(判三司事)가 되었고, 1295년에는 성절사(聖節使)가 되어 원나라에 다녀왔다.

1296년 지도첨의사사(知都僉議司事), 1300년 도첨의찬성사 판감찰사사(都僉議贊成事判監察司事), 1308년(충선왕 즉위) 동지광정원사 참지기무(同知光政院事參知機務)가 되었다.

이때 원나라활리길사(闊里吉思)행성평장(行省平章)으로 와서 모든 노비 중 그 어버이의 한쪽이 양인인 자는 양민으로 하려 하자, 옛 법을 변경할 수 없다고 하여 이를 중지하게 하였다.

1310년에 첨의중찬(僉議中贊)으로 치사하였다. 시호는 광절(光節)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집필자]

진성규(秦星圭)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2010-04-29高麗史 卷一 김지숙전에 화명부인이라 기록된 것을 참고하여 본관을 광산으로 함. 화평은 광주의 고려시대 지명임.
2010-04-29高麗史 卷一 김지숙전을 참고하여 생년을 1237에서 1238로 고침.
2010-04-29朝鮮金石總覽 李穀 撰 柳甫發墓誌銘을 참고하여 시호 광정(匡正)을 광절(光節)로 고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