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예(覺倪)
[상세내용]
각예(覺倪)
생졸년 미상.
『고려사(高麗史)』에 의하면, 각예(覺倪)는 예종(睿宗)의 궁인(宮人)의 아들이다.
1164년(의종 18) 왕이 인지재(仁智齋)에 갔을 때 법천사(法泉寺)의 주지였던 승려 각예(覺倪)가 달령원(獺嶺院)까지 술을 준비하여 왕을 맞이하였다고 한다. 1166년(의종 20)에는 왕이 성수원(聖壽院)에서 각예와 함께 연회를 베풀었는데, 성수원은 각예가 창건하였다.
이후 왕의 총애를 받아 여러 차례 의종의 부름에 응하여 시를 짓거나 하였는데, 1167년(의종 20) 장흥원(長興院)에 가서 우승선(右承宣)이었던 김돈중(金敦中) 등과 시를 짓기도 하였으며, 같은 해 중미정(衆美亭)에서 왕과 함께 배를 타고 놀았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사(高麗史)』에 의하면, 각예(覺倪)는 예종(睿宗)의 궁인(宮人)의 아들이다.
1164년(의종 18) 왕이 인지재(仁智齋)에 갔을 때 법천사(法泉寺)의 주지였던 승려 각예(覺倪)가 달령원(獺嶺院)까지 술을 준비하여 왕을 맞이하였다고 한다. 1166년(의종 20)에는 왕이 성수원(聖壽院)에서 각예와 함께 연회를 베풀었는데, 성수원은 각예가 창건하였다.
이후 왕의 총애를 받아 여러 차례 의종의 부름에 응하여 시를 짓거나 하였는데, 1167년(의종 20) 장흥원(長興院)에 가서 우승선(右承宣)이었던 김돈중(金敦中) 등과 시를 짓기도 하였으며, 같은 해 중미정(衆美亭)에서 왕과 함께 배를 타고 놀았다는 기록이 있다.
[참고문헌]
高麗史
[집필자]
김성수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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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31 | 2008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