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언순(尹彦純)
[상세내용]
윤언순(尹彦純)
생졸년 미상. 고려의 관인. 본관은 파평(坡平).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낸 관(瓘)의 아들이다.
1115년(예종 10) 시어사(侍御史)로서 요나라에 사신으로 가 천흥절(天興節)을 축하하였는데, 당시 금나라가 군사를 일으켜 길이 막힌데다가, 또 고영창(高永昌)이라는 자가 요나라에 대하여 반란을 일으켜 동경(東京)을 점령하였다. 그리하여 요나라에 함께 사신으로 갔었던 진봉사(進奉使) 서방(徐昉), 하정사(賀正使) 이덕윤(李德允) 등과 함께 귀국하던 도중 고영창에게 붙잡혀 억류되었다.
한편, 이들의 귀국이 늦어지자 고려에서는 비서교서랑(祕書校書郞) 정양직(鄭良稷)을 몰래 보내어 그 사정을 상세히 알아오게 하였다.
그러나 동경에 억류당하고 있는 동안 고영창의 핍박을 받아 그의 건국을 찬양하는 표문(表文)을 올렸는데, 돌아온 뒤에 이 일을 숨기고 보고하지 않다가 들통이 나서 탄핵을 받아 징계당하였다. 뒤에 풀려나 남원부사에 이르렀다.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낸 관(瓘)의 아들이다.
1115년(예종 10) 시어사(侍御史)로서 요나라에 사신으로 가 천흥절(天興節)을 축하하였는데, 당시 금나라가 군사를 일으켜 길이 막힌데다가, 또 고영창(高永昌)이라는 자가 요나라에 대하여 반란을 일으켜 동경(東京)을 점령하였다. 그리하여 요나라에 함께 사신으로 갔었던 진봉사(進奉使) 서방(徐昉), 하정사(賀正使) 이덕윤(李德允) 등과 함께 귀국하던 도중 고영창에게 붙잡혀 억류되었다.
한편, 이들의 귀국이 늦어지자 고려에서는 비서교서랑(祕書校書郞) 정양직(鄭良稷)을 몰래 보내어 그 사정을 상세히 알아오게 하였다.
그러나 동경에 억류당하고 있는 동안 고영창의 핍박을 받아 그의 건국을 찬양하는 표문(表文)을 올렸는데, 돌아온 뒤에 이 일을 숨기고 보고하지 않다가 들통이 나서 탄핵을 받아 징계당하였다. 뒤에 풀려나 남원부사에 이르렀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高麗時代의 海州崔氏와 坡平尹氏家門分析(朴龍雲, 白山學報 23, 1977)
高麗史節要
高麗時代의 海州崔氏와 坡平尹氏家門分析(朴龍雲, 白山學報 23, 1977)
[집필자]
이희덕(李熙德)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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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