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저(宋詝)
[상세내용]
송저(宋詝)
생졸년 미상. 고려 의종 때의 문신. 본관은 양주(楊州).
어려서부터 총명하였고, 의종 때 등제하였다. 합문지후(閤門祗候)로 있을 때 정중부(鄭仲夫)의 난이 있었으나 평소에 쌓은 덕으로 화를 면하였다.
1178년(명종 8) 어사중승(御史中丞)으로 법을 위반한 정중부의 가노(家奴)를 치죄하다가 정중부의 노여움을 사서 파직되었다.
그러나 곧 위위경 우간의대부(衛尉卿右諫議大夫)에 제수되었다. 서북면병마사로 있을 때 의주에 문무 2인의 분도관(分道官)이 있어 주인(州人)들의 피해가 큰 점을 들어 문관으로 의주 분도관을 삼아 영주(靈州)‧위원진(威遠鎭)을 예속시키고, 무관으로 정주(靜州)분도관을 삼아 인주(麟州)‧용주(龍州)를 예속시킬 것을 건의하였으나 무신들의 권력을 빼앗는 것이라는 반발을 받아 거제현령으로 좌천되었다.
얼마 뒤 다시 간의대부가 되었으나, 무신에게 재앙이 미칠 것이라는 술사의 말을 믿은 무신들이 그 재앙을 문신에게 옮긴다는 책략에 따라 발생한 무고사건에 연루되어 섬으로 유배되었다.
명종이 그가 죄 없음을 알고 등용하려 하였으나 조정의 논의가 일치하지 못하여 좌절되었다.
1187년 판예빈성사(判禮賓省事)로 치사한 뒤 수년 후 67세로 죽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였고, 의종 때 등제하였다. 합문지후(閤門祗候)로 있을 때 정중부(鄭仲夫)의 난이 있었으나 평소에 쌓은 덕으로 화를 면하였다.
1178년(명종 8) 어사중승(御史中丞)으로 법을 위반한 정중부의 가노(家奴)를 치죄하다가 정중부의 노여움을 사서 파직되었다.
그러나 곧 위위경 우간의대부(衛尉卿右諫議大夫)에 제수되었다. 서북면병마사로 있을 때 의주에 문무 2인의 분도관(分道官)이 있어 주인(州人)들의 피해가 큰 점을 들어 문관으로 의주 분도관을 삼아 영주(靈州)‧위원진(威遠鎭)을 예속시키고, 무관으로 정주(靜州)분도관을 삼아 인주(麟州)‧용주(龍州)를 예속시킬 것을 건의하였으나 무신들의 권력을 빼앗는 것이라는 반발을 받아 거제현령으로 좌천되었다.
얼마 뒤 다시 간의대부가 되었으나, 무신에게 재앙이 미칠 것이라는 술사의 말을 믿은 무신들이 그 재앙을 문신에게 옮긴다는 책략에 따라 발생한 무고사건에 연루되어 섬으로 유배되었다.
명종이 그가 죄 없음을 알고 등용하려 하였으나 조정의 논의가 일치하지 못하여 좌절되었다.
1187년 판예빈성사(判禮賓省事)로 치사한 뒤 수년 후 67세로 죽었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高麗史節要
[집필자]
이희덕(李熙德)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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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