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수(盧仁綏)
[상세내용]
노인수(盧仁綏)
미상∼1227년(고종 14). 고려 최씨정권시대의 무신.
1216년 삭주(朔州)의 분도장군(分道將軍)으로 있을 때, 거란의 유족들이 대거 침략해 들어왔는데도 절에서 불공만을 드리면서 방어전을 포기한 채 개경으로 도망하였다. 이 일로 인하여 최충헌(崔忠獻)에 의해 관직을 박탈당하고, 그뒤 변산(邊山)으로 내려가 여러 해 동안 승려생활을 하였다.
그뒤 최우(崔瑀)가 집권하면서 다시 발탁되어 그의 측근이 되었으며, 곧 상장군까지 올랐다.
1222년경에는 광주(光州) 등 전라도지역에 소재한 자신의 토지를 송광사(松廣寺)에 시납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최우를 모살하려는 희종복위운동(熙宗復位運動)에 연루되어, 1227년 주연지(周演之) 등과 함께 처단되었다.
1216년 삭주(朔州)의 분도장군(分道將軍)으로 있을 때, 거란의 유족들이 대거 침략해 들어왔는데도 절에서 불공만을 드리면서 방어전을 포기한 채 개경으로 도망하였다. 이 일로 인하여 최충헌(崔忠獻)에 의해 관직을 박탈당하고, 그뒤 변산(邊山)으로 내려가 여러 해 동안 승려생활을 하였다.
그뒤 최우(崔瑀)가 집권하면서 다시 발탁되어 그의 측근이 되었으며, 곧 상장군까지 올랐다.
1222년경에는 광주(光州) 등 전라도지역에 소재한 자신의 토지를 송광사(松廣寺)에 시납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최우를 모살하려는 희종복위운동(熙宗復位運動)에 연루되어, 1227년 주연지(周演之) 등과 함께 처단되었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13세기 초엽 部曲의 存在形態(朴宗基, 韓國史硏究 33, 1981)
高麗史節要
13세기 초엽 部曲의 存在形態(朴宗基, 韓國史硏究 33, 1981)
[집필자]
윤용혁(尹龍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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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