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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경(金仁鏡)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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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異名)양경(良鏡)
시호(諡號)정숙(貞肅)
생년?(미상)
졸년1235(고종 22)
시대고려중기
본관경주(慶州)
활동분야문신 > 문신
김영고(金永固)
4대조김의진(金義珍)

[상세내용]

김인경(金仁鏡)
미상∼1235년(고종 22). 고려시대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초명은 김양경(金良鏡). 양신공(良愼公) 김의진(金義珍)의 4대손이며, 부친은 합문지후를 지낸 김영고(金永固)이다.

명종 때 문과에 차석으로 급제하여 직사관(直史官)을 거쳐 기거사인(起居舍人)이 되었다. 고종조충(趙冲)강동성(江東城)에서 거란군을 토벌할 때 판관으로 출전하여 큰 공을 세웠다.

이때에 세운 공은 원나라 장군들까지도 그의 진용이 정숙함을 감탄하여 상좌에 모시고 위로의 연회를 베풀어줄 정도로 큰 것이었다. 예부낭중을 거쳐 추밀원우승선이 되었으며 1227년(고종 14)에는 수찬관(修撰官)으로 『명종실록』을 찬수하였다.

그해에 동진(東眞)의 군대가 정주(定州)장주(長州)로 쳐들어오자 지중군병마사가 되어 의주(宜州: 지금의 德源)에서 싸웠으나 대패하여 상주목사로 좌천되었다. 얼마 뒤 형부상서한림학사에 오르고 지공거(知貢擧)가 되어 인재를 취하였다. 이어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 등을 역임하였다.

1232년 강화천도 이듬해 왕경유수병마사(王京留守兵馬使)가 되고 정당문학(正堂文學) 이부상서(吏部尙書) 감수국사(監修國史)를 거쳐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에 이르렀다. 문무를 겸하였으며 일반행정에도 뛰어나 여러가지 재능을 겸비한 것으로 인정받았다.

특히, 시사(詩詞)가 청신하고 당대에 유행하는 시부를 잘하여 세상에서 ‘양경시부(良鏡詩賦)’라고 칭송하였고, 서체는 예서에 뛰어났다. 시호는 정숙(貞肅)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집필자]

나만수(羅滿洙)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