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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충의(張忠義)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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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異名)장충정(張忠正)
생년1109(예종 4)
졸년1180(명종 10)
시대고려중기
활동분야문신 > 문신
조부제망(齊望)
출신지홍천

[상세내용]

장충의(張忠義)
1109년(예종 4)∼1180년(명종 10). 고려의 문신. 홍천 출신. 본명은 충정(忠正). 태자태보(太子太保)를 지낸 제망(齊望)의 손자이다.

문과에 급제한 뒤 용주통판(龍州通判)이 되었고, 말을 잘하여 금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기도 하였으며, 주로 외국사신의 접대를 맡아보다가 영송판관(迎送判官)이 되었다.

1170년(명종 즉위) 내시원(內侍院)을 거쳐 감찰어사동북면을 순시하며 탐관오리들을 탄핵하기도 하였다. 전중내급사(殿中內給事)상식봉어(尙食奉御)동북로감세사(東北路監稅使) 등을 두루 겨쳐 이부원외랑 지제고(吏部員外郞知制誥)를 지냈다.

1175년 정중부(鄭仲夫)가 70세가 되어 치사하려는 것을 만류하여 그의 권세가 더욱 커지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하였다.

사재소경 호부시랑 위위경(司宰少卿戶部侍郞衛尉卿)을 거쳐 1180년 판예빈성사(判禮賓省事)로서 서경재제부사(西京齋祭副使)로 갔다가 죽었다.

[참고문헌]

高麗史
朝鮮金石總覽

[집필자]

이상선(李相瑄)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