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현(李資玄)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74C790D604B1061X0 |
자(字) | 진정(眞靖) |
호(號) | 식암(息庵) |
호(號) | 청평거사(淸平居士) |
호(號) | 희이자(希夷子) |
시호(諡號) | 진락(眞樂) |
생년 | 1061(문종 15) |
졸년 | 1125(인종 3) |
시대 | 고려중기 |
본관 | 인천(仁川) |
활동분야 | 학자 > 유생 |
부 | 이의(李顗) |
조부 | 이자연(李子淵) |
[상세내용]
이자현(李資玄)
1061년(문종 15)∼1125년(인종 3). 고려의 학자.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진정(眞靖), 호는 식암(息庵)‧청평거사(淸平居士)‧희이자(希夷子). 이자연(李子淵)의 손자이며, 이의(李顗)의 맏아들이다.
1089년(선종 6) 과거에 급제하여 대악서승(大樂署丞)이 되었으나 관직을 버리고 춘천의 청평산(淸平山)에 들어가서 아버지가 세웠던 보현원(普賢院)을 문수원(文殊院)이라 고치고 당(堂)과 암자를 지어 이곳에서 나물밥과 베옷으로 생활하며 선(禪)을 즐겼다. 예종이 사람을 시켜 다향(茶香)과 금백(金帛)을 보내어 여러 번 불렀으나 사양하였다.
1117년(예종 12) 예종이 남경(南京)에 행차하였을 때 왕을 만나기는 하였으나 곧 다시 문수원에 들어가 평생을 수도생활로 일관하였다.
시호는 진락(眞樂)이다.
1089년(선종 6) 과거에 급제하여 대악서승(大樂署丞)이 되었으나 관직을 버리고 춘천의 청평산(淸平山)에 들어가서 아버지가 세웠던 보현원(普賢院)을 문수원(文殊院)이라 고치고 당(堂)과 암자를 지어 이곳에서 나물밥과 베옷으로 생활하며 선(禪)을 즐겼다. 예종이 사람을 시켜 다향(茶香)과 금백(金帛)을 보내어 여러 번 불렀으나 사양하였다.
1117년(예종 12) 예종이 남경(南京)에 행차하였을 때 왕을 만나기는 하였으나 곧 다시 문수원에 들어가 평생을 수도생활로 일관하였다.
시호는 진락(眞樂)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補閑集
高麗史節要
補閑集
[집필자]
진성규(秦星圭)
대표명 | 이자현(李資玄) |
명 | 자현(資玄) |
호 | 청평거사(淸平居士) |
명 : "자현(資玄)"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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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