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약온(金若溫)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E40C57DC628B1059X0 |
이명(異名) | 의문(義文) |
자(字) | 유승(柔勝) |
시호(諡號) | 사정(思靖) |
생년 | 1059(문종 13) |
졸년 | 1140(인종 18) |
시대 | 고려중기 |
본관 | 광양(光陽)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김양감(金良鑑) |
[상세내용]
김약온(金若溫)
1059년(문종 13)∼1140년(인종 18). 고려시대의 문신. 본관은 광양(光陽)(주1)
. 초명은 김의문(金義文), 자는 유승(柔勝).
부친은 시중을 지낸 김양감(金良鑑)이다.
과거에 급제한 뒤 상의봉어(尙衣奉御)를 거쳐 광주통판(廣州通判)이 되었다가 중서사인(中書舍人)이 되었다. 이어 합문사(閤門使)가 되었으며 1122년(예종 17)에는 지추밀원사 겸 태자빈객(知樞密院事兼太子賓客)에 올랐다.
이해 5월 인종이 즉위한 뒤 참지정사가 되었다. 이듬해 중서시랑평장사에 임명되고, 다음해에 검교사도 수사공 상주국(檢校司徒守司空上柱國)이 되었다. 1140년(인종 18)에 문하시중으로 사직하였다.
성품이 공검(恭儉), 청렴하였으며 교만하지 않아, 이자겸(李資謙)이 권력을 쥐고 휘두를 때 그와 인척간이면서도 가까이하지 않았다. 시호는 사정(思靖)이다.
본관 |
『고려사』 97권 김약온 열전의 기사, "김약온의 자는 유승(柔勝)이요 처음 이름은 의문(義文)이며 광양현(光陽縣) 사람이요 시중 김양감(金良鑑)의 아들이다." 참고. 그런데 『증보문헌비고』나 『씨족원류』에는 광산인으로 나온다. 여기서는 일단 고려사의 기록을 따른다. |
부친은 시중을 지낸 김양감(金良鑑)이다.
과거에 급제한 뒤 상의봉어(尙衣奉御)를 거쳐 광주통판(廣州通判)이 되었다가 중서사인(中書舍人)이 되었다. 이어 합문사(閤門使)가 되었으며 1122년(예종 17)에는 지추밀원사 겸 태자빈객(知樞密院事兼太子賓客)에 올랐다.
이해 5월 인종이 즉위한 뒤 참지정사가 되었다. 이듬해 중서시랑평장사에 임명되고, 다음해에 검교사도 수사공 상주국(檢校司徒守司空上柱國)이 되었다. 1140년(인종 18)에 문하시중으로 사직하였다.
성품이 공검(恭儉), 청렴하였으며 교만하지 않아, 이자겸(李資謙)이 권력을 쥐고 휘두를 때 그와 인척간이면서도 가까이하지 않았다. 시호는 사정(思靖)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新增東國輿地勝覽
高麗史節要
新增東國輿地勝覽
[집필자]
진성규(秦星圭)
대표명 | 김약온(金若溫) |
성명 | 김약온(金若溫) |
성명 : "김약온(金若溫)"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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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