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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증(康拯)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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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호(諡號)경양(景襄)
생년1049(문종 3)
졸년1120(예종 15)
시대고려중기
본관영강(永康)
활동분야문신 > 문신

[상세내용]

강증(康拯)
1049년(문종 3)∼1120년(예종 15). 고려시대의 문신. 본관은 영강(永康).

음보로 양온사(良醞史)가 되어 10년 동안 이역(吏役)을 지냈다.

원래 가세(家世)가 한미하고 별다른 기능은 없었으나, 평소 부지런하고 조심스럽게 일을 보았다. 뒤에 군기주부동정(軍器注簿同正)에 올랐으며, 다시 외직에 임명되어 영인진판관 진명도부서부사(寧仁鎭判官鎭溟都部署副使)로 재직중 여진과 싸워 여러번 공을 세웠다.

특히, 1097년(숙종 2) 동여진(東女眞)의 적선 10척이 동북면 진명현(鎭溟縣)에서 약탈을 자행하자, 동북면병마사 김한충(金漢忠)의 명으로 적과 싸워 배 3척을 노획하고 48인을 베었다.

이어 감찰어사가 되고, 1098년에는 중윤(中允), 1101년 고공낭중 어사잡단(考功郞中御史雜端)으로 승진되었다. 뒤에, 동북면병마판관이 되어 능도(菱島)에서 다시 여진과 싸워 이긴 공으로,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에 올랐다.

1105년(예종 즉위)에 지어사대사(知御史臺事)가 되고, 1107년 윤관(尹瓘)의 여진정벌 때는 좌군지병마사(左軍知兵馬事)로 종군하여 공을 세웠으므로 좌산기상시(左散騎常侍)에 올랐다.

1111년에는 서북면병마사, 1112년 어사대부(御史大夫), 1113년 형부상서가 되고, 호부상서 삼사사(戶部尙書三司使)를 거쳐 지추밀원사가 되었다.

1114년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 추밀원사(樞密院使) 판삼사사(判三司事)를 역임한 뒤, 1116년에는 수사공(守司空) 참지정사(參知政事) 판상서형부사(判尙書刑部事) 겸 태자소부(太子少傅)가 되고, 이듬해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에 올라 사직했다.

시호는 경양(景襄)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新增東國輿地勝覽

[집필자]

하현강(河炫綱)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