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충(金漢忠)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E40D55CCDA9B1043X0 |
시호(諡號) | 원평(元平) |
생년 | 1043(정종 9) |
졸년 | 1120(예종 15) |
시대 | 고려중기 |
본관 | 경주(慶州) |
활동분야 | 관료 > 명신 |
고조부 | 김유렴(金庾廉) |
[상세내용]
김한충(金漢忠)
1043년(정종 9)∼1120년(예종 15). 고려의 명신. 본관은 경주(慶州).
신라 왕족의 후예로 경순왕을 따라 고려 태조에게 귀순하여 공신이 된 김유렴(金庾廉)의 고손이다. 과거에 급제한 뒤 1087년(선종 4) 합문인진사(閤門引進使)가 되어 요나라에 다녀왔으며, 그뒤 다시 형부시랑과 예부상서 등을 거쳐 추밀원사(樞密院使)와 상서좌복야가 되었다.
그동안 수차에 걸쳐 군사 지휘권도 맡아 1097년(숙종 2)에는 동북면병마사로서 덕원(德源) 지방을 노략질한 여진을 토벌하여 군공을 세웠으며, 윤관(尹瓘)이 여진을 정벌할 때 중군병마사로 출정하여 공로를 세웠다.
그의 딸은 당대의 명문인 수주최씨가(水州崔氏家)에 출가하였으나, 자신은 문종의 비첩에게서 태어난 여자와 혼인하였으므로 대성(臺省)과 같은 청요직에는 취임하지 못하였다. 시호는 원평(元平)이다.
신라 왕족의 후예로 경순왕을 따라 고려 태조에게 귀순하여 공신이 된 김유렴(金庾廉)의 고손이다. 과거에 급제한 뒤 1087년(선종 4) 합문인진사(閤門引進使)가 되어 요나라에 다녀왔으며, 그뒤 다시 형부시랑과 예부상서 등을 거쳐 추밀원사(樞密院使)와 상서좌복야가 되었다.
그동안 수차에 걸쳐 군사 지휘권도 맡아 1097년(숙종 2)에는 동북면병마사로서 덕원(德源) 지방을 노략질한 여진을 토벌하여 군공을 세웠으며, 윤관(尹瓘)이 여진을 정벌할 때 중군병마사로 출정하여 공로를 세웠다.
그의 딸은 당대의 명문인 수주최씨가(水州崔氏家)에 출가하였으나, 자신은 문종의 비첩에게서 태어난 여자와 혼인하였으므로 대성(臺省)과 같은 청요직에는 취임하지 못하였다. 시호는 원평(元平)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高麗時代 土姓硏究 上(李樹健, 亞細亞學報 12, 1976)
高麗時代 水州崔氏家門分析(朴龍雲, 史叢 26, 1982)
高麗史節要
高麗時代 土姓硏究 上(李樹健, 亞細亞學報 12, 1976)
高麗時代 水州崔氏家門分析(朴龍雲, 史叢 26, 1982)
[집필자]
박용운(朴龍雲)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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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