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혜왕후(神惠王后)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24C2E0D61CC655U9999X0 |
생년 | ?(미상) |
졸년 | ?(미상) |
시대 | 고려전기 |
본관 | 정주(貞州) |
활동분야 | 왕실 > 비빈 |
외조부 | 천궁(天弓) |
묘소 | 현릉(顯陵) |
[상세내용]
신혜왕후(神惠王后)
생졸년 미상. 고려 태조의 제1비. 성은 유씨(柳氏). 본관은 정주(貞州).
삼중대광(三重大匡) 유천궁(柳天弓)의 딸이다.
태조가 궁예(弓裔)의 휘하 장군으로 있을 때, 군사를 거느리고 정주 지방을 지나다가 개천가에 서 있는 부인을 보게 되었다. 그 아름답고 덕기있는 모습과 깨끗한 몸가짐을 보고 아내로 맞았다. 궁예 말년에 정사가 포악해지자 장군 홍유(洪儒)‧배현경(裵玄慶) 등이 왕건(王建)을 추대하여 새 왕으로 모시고자 하였으나, 왕건은 이를 완강히 거절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것을 본 부인 유씨가 장막 뒤에서 나와 “의(義)로써 탐학함을 물리치는 것은 예로부터 해온 일입니다. 지금 여러 장군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아녀자도 분발하겠거늘 하물며 대장부께서야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라고 말하면서 갑옷을 입히고 의거에 참여하도록 권하였다.
태조가 즉위하자 왕비로 봉해지고 뒤에 신혜왕후로 추봉되었다. 태조의 현릉(顯陵)에 부장(祔葬)되었다.
삼중대광(三重大匡) 유천궁(柳天弓)의 딸이다.
태조가 궁예(弓裔)의 휘하 장군으로 있을 때, 군사를 거느리고 정주 지방을 지나다가 개천가에 서 있는 부인을 보게 되었다. 그 아름답고 덕기있는 모습과 깨끗한 몸가짐을 보고 아내로 맞았다. 궁예 말년에 정사가 포악해지자 장군 홍유(洪儒)‧배현경(裵玄慶) 등이 왕건(王建)을 추대하여 새 왕으로 모시고자 하였으나, 왕건은 이를 완강히 거절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것을 본 부인 유씨가 장막 뒤에서 나와 “의(義)로써 탐학함을 물리치는 것은 예로부터 해온 일입니다. 지금 여러 장군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아녀자도 분발하겠거늘 하물며 대장부께서야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라고 말하면서 갑옷을 입히고 의거에 참여하도록 권하였다.
태조가 즉위하자 왕비로 봉해지고 뒤에 신혜왕후로 추봉되었다. 태조의 현릉(顯陵)에 부장(祔葬)되었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高麗史節要
[집필자]
정용숙(鄭容淑)
대표명 | 신혜왕후(神惠王后) |
묘호 | 신혜왕후(神惠王后) |
묘호 : "신혜왕후(神惠王后)"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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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