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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광주원부인(小廣州院夫人)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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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미상)
졸년?(미상)
시대고려전기
활동분야왕실 > 비빈
왕규(王規)
출신지경기도 광주

[상세내용]

소광주원부인(小廣州院夫人)
생졸년 미상. 고려 태조의 제16비. 경기도 광주사람으로 대광(大匡) 왕규(王規)의 딸이며 광주원군(廣州院君)의 어머니이다.

왕규는 2명의 딸을 태조에게 출가시키고 1명은 혜종에게 혼인시켜 3명의 딸이 모두 왕실 후비가 되었다. 태조고려를 세운 뒤 호족세력을 통합하는 방법의 하나로 혼인정책을 추진하였는데, 그 대상은 즉위를 도와준 무장세력, 학문적 능력을 가진 문사층, 귀부해온 지방호족 및 신라왕족과 같은 광범한 세력이었다.

그런데 왕규는 학문적 역량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던 인물인 듯하다. 중국진(晉)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기도 하였고, 태조의 유언을 한문으로 받아 적기도 하는 등 태조의 측근으로 활약하였다.

그러나 태조가 죽고 혜종이 즉위하자 왕규는 자신의 외손자인 광주원군을 왕위에 추대하기 위하여 혜종을 시해하고자 하기도 하였고, 혜종이 죽은 뒤에는 태조의 셋째아들 정종과 왕위다툼을 벌이다가 반역죄로 처형되었다.

그 와중에서 왕규의 일당 수백명이 함께 죽임을 당하였는데, 왕규의 딸인 소광주원부인이 무사하였을지는 의문이다. 생존하여 있었다 하더라도 반역자의 딸은 왕실에서 축출되는 예가 많아 왕비의 자리에서 밀려났을 것으로 짐작된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惠宗朝 王位繼承亂의 新解釋(姜喜雄, 韓國學報 7, 1977)
고려시대의 后妃(정용숙, 民音社, 1992)

[집필자]

정용숙(鄭容淑)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