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광주원부인(小廣州院夫人)
[상세내용]
소광주원부인(小廣州院夫人)
생졸년 미상. 고려 태조의 제16비. 경기도 광주사람으로 대광(大匡) 왕규(王規)의 딸이며 광주원군(廣州院君)의 어머니이다.
왕규는 2명의 딸을 태조에게 출가시키고 1명은 혜종에게 혼인시켜 3명의 딸이 모두 왕실 후비가 되었다. 태조는 고려를 세운 뒤 호족세력을 통합하는 방법의 하나로 혼인정책을 추진하였는데, 그 대상은 즉위를 도와준 무장세력, 학문적 능력을 가진 문사층, 귀부해온 지방호족 및 신라왕족과 같은 광범한 세력이었다.
그런데 왕규는 학문적 역량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던 인물인 듯하다. 중국의 진(晉)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기도 하였고, 태조의 유언을 한문으로 받아 적기도 하는 등 태조의 측근으로 활약하였다.
그러나 태조가 죽고 혜종이 즉위하자 왕규는 자신의 외손자인 광주원군을 왕위에 추대하기 위하여 혜종을 시해하고자 하기도 하였고, 혜종이 죽은 뒤에는 태조의 셋째아들 정종과 왕위다툼을 벌이다가 반역죄로 처형되었다.
그 와중에서 왕규의 일당 수백명이 함께 죽임을 당하였는데, 왕규의 딸인 소광주원부인이 무사하였을지는 의문이다. 생존하여 있었다 하더라도 반역자의 딸은 왕실에서 축출되는 예가 많아 왕비의 자리에서 밀려났을 것으로 짐작된다.
왕규는 2명의 딸을 태조에게 출가시키고 1명은 혜종에게 혼인시켜 3명의 딸이 모두 왕실 후비가 되었다. 태조는 고려를 세운 뒤 호족세력을 통합하는 방법의 하나로 혼인정책을 추진하였는데, 그 대상은 즉위를 도와준 무장세력, 학문적 능력을 가진 문사층, 귀부해온 지방호족 및 신라왕족과 같은 광범한 세력이었다.
그런데 왕규는 학문적 역량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던 인물인 듯하다. 중국의 진(晉)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기도 하였고, 태조의 유언을 한문으로 받아 적기도 하는 등 태조의 측근으로 활약하였다.
그러나 태조가 죽고 혜종이 즉위하자 왕규는 자신의 외손자인 광주원군을 왕위에 추대하기 위하여 혜종을 시해하고자 하기도 하였고, 혜종이 죽은 뒤에는 태조의 셋째아들 정종과 왕위다툼을 벌이다가 반역죄로 처형되었다.
그 와중에서 왕규의 일당 수백명이 함께 죽임을 당하였는데, 왕규의 딸인 소광주원부인이 무사하였을지는 의문이다. 생존하여 있었다 하더라도 반역자의 딸은 왕실에서 축출되는 예가 많아 왕비의 자리에서 밀려났을 것으로 짐작된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惠宗朝 王位繼承亂의 新解釋(姜喜雄, 韓國學報 7, 1977)
고려시대의 后妃(정용숙, 民音社, 1992)
高麗惠宗朝 王位繼承亂의 新解釋(姜喜雄, 韓國學報 7, 1977)
고려시대의 后妃(정용숙, 民音社, 1992)
[집필자]
정용숙(鄭容淑)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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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