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대명주원부인(大溟州院夫人)

[요약정보]

UCIG002+AKS-KHF_26B300BA85C8FCU9999X0
생년?(미상)
졸년?(미상)
시대고려전기
활동분야왕실 > 비빈
왕예(王乂)
출신지명주(溟州: 지금의 江陵)

[상세내용]

대명주원부인(大溟州院夫人)
생졸년 미상. 고려 태조의 제14비. 명주(溟州: 지금의 江陵)사람이며 내사령(內史令)의 증직을 받은 왕예(王乂)의 딸이다.

태조고려를 세운 뒤 지방 호족세력을 포섭하기 위하여 여러가지 노력을 기울였는데, 그 가운데서도 명주 지방에 대한 관심은 상당하였다. 태조명주의 성주(城主)이며 장군인 왕순식(王順式)을 포섭하기 위하여 내원(內院)의 승려로 있는 그의 부친 허월(許越)을 보내 귀부를 권유하였고, 왕순식의 내투시에는 왕성(王姓)을 하사하고 관직과 전택(田宅)을 주어 우대하였다.

왕예왕순식의 관계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왕예왕순식의 휘하에서 태조의 통일전에 참여하였으며, 둘다 신라왕족의 후예라는 점, 고려에 와서 사성되었다는 점, 그리고 태조왕예의 딸을 왕비로 맞아들였다는 점에서 두 사람을 근친관계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왕예명주 지방에서 독자적 군사권을 장악하고 있던 지방호족이었으며, 940년(태조 23)경 명주의 도령(都領)으로서 주진군(州鎭軍) 지휘관의 위치에 있었다. 태조는 귀부 호족을 포섭하는 방법의 하나로 이들과 혼인관계를 맺었던 것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金周元 世系의 成立과 그 變遷(金貞淑, 白山學報 28, 1984)
羅末麗初 地方勢力의 動向(金甲童, 羅末麗初의 豪族과 社會變動硏究, 高麗大學校民族文化硏究所, 1990)

[집필자]

정용숙(鄭容淑)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