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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공신(河拱辰)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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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미상)
졸년1011(현종 2)
시대고려전기
본관진양(晉陽)
활동분야문신 > 문신

[상세내용]

하공신(河拱辰)
미상∼1011년(현종 2). 고려의 문신. 본관은 진양(晉陽).

994년(성종 13)에 압강도구당사(鴨江渡勾當使)가 되었다.

목종중랑장(中郞將)으로서, 목종이 병들어 자리에 눕자 친종장군(親從將軍) 유방(庾方), 중랑장 탁사정(卓思政) 등과 함께 목종이 거처하는 궁궐주변을 지켰으며, 얼마 뒤 상서좌사낭중(尙書左司郞中)이 되었다.

1010년(현종 1)에 일찍이 동서계(東西界)에 있을 때 임의로 군대를 동원하여 동여진(東女眞)의 촌락을 치다가 패한 일이 드러나 유배당하였다.

그해 거란성종목종을 시해한 강조의 죄를 묻는다는 핑계로 고려에 침입하자 유배에서 풀려 났다.

호부원외랑(戶部員外郞) 고영기(高英起)와 함께 군사 20여명을 거느리고 남쪽으로 피난 중이던 현종을 뒤따라가 양주에서 거란군의 철수교섭을 자청, 국왕의 사절로 거란 성종을 만나 군대를 철수시키는 데 공을 세웠다.

고영기와 함께 거란에 볼모로 잡혀가 거란왕에게 신임을 받았으나, 탈출을 꾀하다가 실패하여 연경(燕京)으로 옮겨져 양가(良家)의 딸을 아내로 맞아 살면서 철저한 감시를 받게 되었다.

평소 저자에서 준마(駿馬)를 많이 사 고려로 가는 길에 배치하여 두고 귀국을 꾀하다가 탄로가 나 거란왕의 국문(鞠問)을 받게 되었다.

거란왕은 온갖 악형과 회유로 신하가 될 것을 요청하였으나 이를 완강히 거절하였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심한 모욕적인 말로 응대하여 거란왕을 크게 격분시킴으로써 살해된 뒤 간마저 꺼내져 씹히기까지 하였다.

상서공부시랑(尙書工部侍郞)에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집필자]

하현강(河炫綱)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