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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질(崔質)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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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미상)
졸년1015(현종 6)
시대고려전기
활동분야무신 > 무신

[상세내용]

최질(崔質)
미상∼1015년(현종 6). 고려의 무신.

1010년(현종 1) 거란의 2차침입 때 중랑장(中郞將)으로서 김훈(金訓)양규(楊規) 등과 함께 여러 차례 거란군을 물리치는 공을 세웠다.

1014년 중추원일직원(中樞院日直員) 황보 유의(皇甫兪義)중추원사 장연우(張延祐)와 더불어 1010년 거란침입 이래 군액(軍額)을 늘림으로써 백관의 녹봉이 부족하게 되었는데, 이를 건의하여 경군(京軍)의 영업전(永業田)을 빼앗아 녹봉에 충당하게 하니 무관들의 불평이 많았다.

이때 상장군으로서 무공에 의한 무직(武職)을 받았으나 문관을 하지 못하여 불만이 많던 중 상장군 김훈박성(朴成)이협(李協)이섬(李暹)석방현(石邦賢)최가정(崔可貞)공문(恭文)임맹(林猛) 등과 함께 영업전을 뺏은 것을 이유로 군사를 달래어 궁궐에 난입하여 황보 유의장연우를 유배하였다.

김훈 등이 무관 상참(常參)이상은 문관을 겸하도록 청하니 이를 시행하였다. 화주방어사(和州防禦使)로 있던 왕가도(王可道)가 만기가 되어 서울에 돌아와 있으면서 일직(日直) 김맹(金猛)에게 이르기를 “왕이 어찌 한고조(漢高祖)의 운몽순유(雲夢巡遊)를 본받지 않는가.”하니, 이것이 왕에게 전하여져 왕가도에게 서경유수판관을 권수하여 먼저 가서 준비하고, 다음해 왕이 서경에 행차하여 군신(群臣)을 장락궁(長樂宮)에서 향연하고 김훈 등이 취한 틈을 타서 김훈최질이협최가정석방현이섬임맹김정열(金貞悅)효암(孝嵒)최구(崔龜) 등 19인을 베었다.

김훈최질의 난’은 무신난의 선구라 일컬어진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高麗顯宗에 대한 硏究(文秀鎭, 新丘專門大學論文集 2, 1984)

[집필자]

문수진(文秀鎭)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