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배걸(鄭倍傑)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815BC30AC78U9999X0 |
이명(異名) | 정걸(鄭傑) |
시호(諡號) | 홍문(弘文) |
생년 | ?(미상) |
졸년 | ?(미상) |
시대 | 고려전기 |
본관 | 초계(草溪)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상세내용]
정배걸(鄭倍傑)
생졸년 미상. 고려의 문신. 이명은 정걸(鄭傑)(주1)
. 본관은 초계(草溪)(주2)
. 초계정씨(草溪鄭氏)의 시조이다.
1017년(현종 8) 지공거(知貢擧) 곽원(郭元)의 문하에서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1035년(정종 1) 좌습유 지제고(左拾遺知制誥)를 역임하고, 1047년(문종 1)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로서 지공거가 되어 김정신(金鼎新) 등 진사를 선발하였다. 이후 예부상서 중추사(禮部尙書中樞使)에 이르렀다.
일찍이 사숙(私塾)을 열어 자제들을 가르쳤는데, 이를 홍문공도(弘文公徒) 또는 웅천도(熊川徒)라 불렀으며, 당시 사학십이도(私學十二徒) 중 하나였다.
그가 죽은 뒤 문종은 1080년에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조서를 내리고, 홍문광학추성찬화공신 개부의동삼사 수태위 문하시중 상주국 광유후(弘文廣學推誠贊化功臣開府儀同三司守太尉門下侍中上柱國光儒侯)를 추증하였다. 시호는 홍문(弘文)이다.
이명 |
고려사에는 정걸(鄭傑)로 기록됨. |
본관 |
본인의 고려문과를 참조하여 본관을 초계(草溪)로 추가함. 초계정씨의 시조임. |
1017년(현종 8) 지공거(知貢擧) 곽원(郭元)의 문하에서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1035년(정종 1) 좌습유 지제고(左拾遺知制誥)를 역임하고, 1047년(문종 1)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로서 지공거가 되어 김정신(金鼎新) 등 진사를 선발하였다. 이후 예부상서 중추사(禮部尙書中樞使)에 이르렀다.
일찍이 사숙(私塾)을 열어 자제들을 가르쳤는데, 이를 홍문공도(弘文公徒) 또는 웅천도(熊川徒)라 불렀으며, 당시 사학십이도(私學十二徒) 중 하나였다.
그가 죽은 뒤 문종은 1080년에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조서를 내리고, 홍문광학추성찬화공신 개부의동삼사 수태위 문하시중 상주국 광유후(弘文廣學推誠贊化功臣開府儀同三司守太尉門下侍中上柱國光儒侯)를 추증하였다. 시호는 홍문(弘文)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高麗史節要
[집필자]
신천식(申千湜)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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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