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鄭文)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C815BB38FFFFD1106X0 |
자(字) | 의덕(懿德) |
시호(諡號) | 정간(貞簡) |
생년 | ?(미상) |
졸년 | 1106(예종 1) |
시대 | 고려전기 |
본관 | 초계(草溪)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정배걸(鄭倍傑) |

[상세내용]
정문(鄭文)
미상∼1106년(예종 1). 고려의 문신‧학자.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의덕(懿德). 예부상서‧중추원사(中樞院使) 정배걸(鄭倍傑)의 아들이다.
유복자로 태어나 문과에 급제한 뒤 비서랑 겸 사문조교(祕書郞兼四門助敎)에 발탁되었다.
이어 우습유(右拾遺)가 되자, 대간에서 그의 외조가 처인부곡(處仁部曲)출신이므로 간관이 됨은 마땅하지 않다고 하므로 전중내급사 지제고(殿中內給使知制誥)로 개수(改授)되었다가 지개성부사 형부원외랑(知開城府事刑部員外郞)이 되었다.
1105년(숙종 10)에 형부상서 정당문학 겸 태자빈객(刑部尙書政堂文學兼太子賓客)이 되고 검교사공 예부상서(檢校司空禮部尙書)가 더해졌다.
청렴, 공정하여 형조를 10여년 맡았으나 일을 잘 처리하였고, 송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면서 받은 금백(金帛)을 그의 종자에게 나누어주고 그 나머지로는 모두 서적을 사가지고 왔다 한다.
일찍이 서경에 호종하여 기자(箕子)의 사당을 세우도록 청하기도 하였다.
죽은 뒤 특진 좌복야 참지정사(特進左僕射參知政事)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정간(貞簡)이다.
유복자로 태어나 문과에 급제한 뒤 비서랑 겸 사문조교(祕書郞兼四門助敎)에 발탁되었다.
이어 우습유(右拾遺)가 되자, 대간에서 그의 외조가 처인부곡(處仁部曲)출신이므로 간관이 됨은 마땅하지 않다고 하므로 전중내급사 지제고(殿中內給使知制誥)로 개수(改授)되었다가 지개성부사 형부원외랑(知開城府事刑部員外郞)이 되었다.
1105년(숙종 10)에 형부상서 정당문학 겸 태자빈객(刑部尙書政堂文學兼太子賓客)이 되고 검교사공 예부상서(檢校司空禮部尙書)가 더해졌다.
청렴, 공정하여 형조를 10여년 맡았으나 일을 잘 처리하였고, 송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면서 받은 금백(金帛)을 그의 종자에게 나누어주고 그 나머지로는 모두 서적을 사가지고 왔다 한다.
일찍이 서경에 호종하여 기자(箕子)의 사당을 세우도록 청하기도 하였다.
죽은 뒤 특진 좌복야 참지정사(特進左僕射參知政事)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정간(貞簡)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집필자]
나만수(羅滿洙)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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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