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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총지(王寵之)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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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호(諡號)경숙(景肅)
생년?(미상)
졸년1067(문종 21)
시대고려전기
본관강릉(江陵)
활동분야문신 > 문신

[상세내용]

왕총지(王寵之)
미상∼1067년(문종 21).(주1)
몰년
『고려사』 제95권 왕총지 열전의 "왕총지는 ... 문하시중 판 상서 이부사로 승직되었고 문종 21년(1067)에 중서령으로 있다가 치사하고 죽으니 왕이 3일간 정무를 정지하고
고려의 문신. 본관은 강릉(江陵)(주2)
본관
증보문헌비고 제52권 제계고 13 강릉왕씨편, "강릉 왕씨(江陵王氏)..시조 왕유(王裕)는 벼슬이 원보(元甫)였다. 태조의 아들로서, 강릉으로 분적하였다. 손자 왕총지(王寵之)는 벼슬이 시중(侍中)이었으며..." 참고.
.

현종 때 과거에 급제하고 여러 벼슬을 거쳐 기거사인(起居舍人)에 올랐다. 정종(靖宗)우승선 급사중(右承宣給事中)으로 도병마부사(都兵馬副使) 박성걸(朴成傑)과 함께 동로(東路) 정변진(靜邊鎭)의 축성을 주장하여 실현시켰고, 지주사 예빈경(知奏事禮賓卿)에 전임되었다.

1040년(정종 6) 중추원지주사(中樞院知奏事)가 되고, 1044년에는 동북로병마사 참지정사(參知政事) 김영기(金令器)와 함께 장주(長州)정주(定州)원흥진(元興鎭)에 성을 쌓았다. 1047년(문종 1) 중추사서북면중군사 겸 행영병마사(西北面中軍使兼行營兵馬使)가 되어 수사공 상주국(守司空上柱國)이 더해졌다. 이어 이부상서도병마사가 되어 군대의 훈련에 힘썼다. 이어 내사시랑을 거쳐 1053년 문하시랑 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가 되어, 병마사사직을 청하였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1061년에 문하시중 판상서이부사를 지낸 뒤 1067년 중서령(中書令)으로 치사(致仕)하였다.

1080년에는 수태사 중서령(守太師中書令)에 추증되었으며, 문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경숙(景肅)이다.(주3)
문종 묘역 배향 및 시호
『고려사』 제95권 왕총지 열전의 "왕총지는 ... 문종 21년(1067)에 중서령으로 있다가 치사하고 죽으니 왕이 3일간 정무를 정지하고 경숙(景肅)이란 시호를 주었다. 후일에 왕이 그의 생전의 덕망을 생각하고 조서를 내려 찬양하는 뜻을 표하고 수태사 중서령의 증직을 내렸으며 문종 묘정에 배향하였다" 참고.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집필자]

장숙경(張淑卿)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