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식렴(王式廉)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655C2DDB834D0949X0 |
시호(諡號) | 위정(威靜) |
생년 | ?(미상) |
졸년 | 949(정종 4) |
시대 | 고려전기 |
본관 | 개성(開城) |
활동분야 | 변란 > 공신 |
부 | 왕평달(王平達) |
공신호 | 광국익찬공신(匡國翊贊功臣) |
[상세내용]
왕식렴(王式廉)
미상∼949년(정종 4). 고려 초기의 공신. 개성왕씨(開城王氏).
부친은 삼중대광(三重大匡) 왕평달(王平達)이며, 태조의 종제이다.
처음에 군부서사(軍部書史)가 된 뒤에 여러 벼슬을 거쳤다.
918년(태조 1)에 태조가 황폐한 평양에 사람들을 이주시켜 대도호부로 삼고 담당관원을 파견할 때 그 책임자로 등용되어 평양을 지키면서 안수진(安水鎭)‧흥덕진(興德鎭) 등에 성을 쌓아, 그 공으로 여러 차례 승진하여 좌승(佐丞)이 되었다.
태조가 죽고 혜종이 왕위에 오른 뒤에는 서경을 기반으로 한 막강한 실력자가 되어 혜종의 이복동생 요(堯: 뒤의 定宗)와 제휴하였다.
945년(혜종 2)에 왕규(王規)의 혜종 암살음모 등 중앙의 정정(政情)이 어수선해지자 서경에서 군사를 거느리고 수도에 들어가 왕규와 그 무리 300여명을 제거하여 정종의 즉위에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으며, 광국익찬공신(匡國翊贊功臣)으로 대승(大丞)이 되어 왕의 극진한 예우를 받았다.
호기위 태사 삼중대광 개국공(虎騎尉太師三重大匡開國公)으로 추증, 정종 묘정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위정(威靜)이다.
부친은 삼중대광(三重大匡) 왕평달(王平達)이며, 태조의 종제이다.
처음에 군부서사(軍部書史)가 된 뒤에 여러 벼슬을 거쳤다.
918년(태조 1)에 태조가 황폐한 평양에 사람들을 이주시켜 대도호부로 삼고 담당관원을 파견할 때 그 책임자로 등용되어 평양을 지키면서 안수진(安水鎭)‧흥덕진(興德鎭) 등에 성을 쌓아, 그 공으로 여러 차례 승진하여 좌승(佐丞)이 되었다.
태조가 죽고 혜종이 왕위에 오른 뒤에는 서경을 기반으로 한 막강한 실력자가 되어 혜종의 이복동생 요(堯: 뒤의 定宗)와 제휴하였다.
945년(혜종 2)에 왕규(王規)의 혜종 암살음모 등 중앙의 정정(政情)이 어수선해지자 서경에서 군사를 거느리고 수도에 들어가 왕규와 그 무리 300여명을 제거하여 정종의 즉위에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으며, 광국익찬공신(匡國翊贊功臣)으로 대승(大丞)이 되어 왕의 극진한 예우를 받았다.
호기위 태사 삼중대광 개국공(虎騎尉太師三重大匡開國公)으로 추증, 정종 묘정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위정(威靜)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高麗史節要
[집필자]
하현강(河炫綱)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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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