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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눌(徐訥)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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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호(諡號)원숙(元肅)
생년?(미상)
졸년1042(정종 8)
시대고려전기
본관이천(利川)
활동분야문신 > 문신
서희(徐熙)

[상세내용]

서눌(徐訥)
미상∼1042년(정종 8). 고려의 문신. 본관은 이천(利川).

태보 내사령(太保內史令) 서희(徐熙)의 아들이다.

996년(성종 15)에 갑과에 급제하였다.

1016년(현종 7) 중승(中丞)이 되고, 이듬해 형부시랑(刑部侍郞)이 되어 송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으며, 1018년 상서이부시랑 겸좌간의대부(尙書吏部侍郞兼左諫議大夫)를 거쳐 국자좨주 지이부사(國子祭酒知吏部事)를 지냈다. 딸이 왕비가 되자 1022년 중추사 우산기상시(中樞使右散騎常侍)에 오르고, 내사시랑 판서경유수사(內史侍郞判西京留守事)를 역임하였다.

1030년 문하시랑 동내사문하평장사 판상서이부사(門下侍郞同內史門下平章事判尙書吏部事), 덕종검교태사(檢校太師)가 되고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에 올랐으며 정종판도병마사(判都兵馬事)가 되었다.

1041년(정종 7)에 궤장(几杖)을 받고 중대광(重大匡)이 되었다.

이듬해 두번 상표하여 퇴관을 원하였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병이 들어 지장사(地藏寺)에 머무르고 있을 때 임금이 우승선(右丞宣) 김정준(金廷俊)을 보내어 어의(御衣) 2습(襲), 곡(穀) 1,000석, 말 2필을 절에 들이어 복을 빌었다. 병이 위독해지자 임금의 문병을 받고, 삼중대광 내사령(三重大匡內史令)에 임명됨과 함께 자손에게 영업전(永業田)이 하사되었다. 정종의 묘정(廟庭)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원숙(元肅)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집필자]

오성(吳星)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