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龔直)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ACF5C9C1FFFFD0939X0 |
시호(諡號) | 봉의(奉義) |
생년 | ?(미상) |
졸년 | 939(태조 22) |
시대 | 고려전기 |
활동분야 | 변란 > 모반인 |
처부 | 준행(俊行) |
[상세내용]
공직(龔直)
미상∼939년(태조 22). 고려 초기의 반란자. 연산(燕山) 매곡(昧谷)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용략이 있었으며, 신라말의 혼란기에 본읍(本邑)의 장군을 칭하였다.
처음 후백제 견훤(甄萱)의 세력에 속하였던 것 같으며, 맏아들 직달(直達), 둘째아들 금서(金舒)와 딸 하나가 견훤의 볼모로 있었다. 후백제에 조공하였으나, 그 무도함을 보고 직달과 함께 왕건(王建)에게 귀부할 것을 의논한 뒤 932년 아들 영서(英舒)와 같이 고려에 귀부하였다.
태조가 대상(大相)으로 삼고 백성군록(白城郡祿)과 구마(廏馬) 세필, 채백(采帛)을 주고, 아들 함서(咸舒)는 좌윤(佐尹)으로 삼고, 정조(正朝) 준행(俊行)의 딸을 영서의 아내로 삼게 하였다.
견훤은 공직이 태조에게 항복함을 보고 매우 노하여 직달과 금서 및 그 딸을 잡아 가두고 단근질하여 죽였다. 좌승(佐丞)으로 죽으니 정광(政匡)을 추증하였다.
시호는 봉의(奉義)이다. 함서로 후사를 삼고 다시 사공삼중대광(司空三重大匡)을 추증하였다.
어려서부터 용략이 있었으며, 신라말의 혼란기에 본읍(本邑)의 장군을 칭하였다.
처음 후백제 견훤(甄萱)의 세력에 속하였던 것 같으며, 맏아들 직달(直達), 둘째아들 금서(金舒)와 딸 하나가 견훤의 볼모로 있었다. 후백제에 조공하였으나, 그 무도함을 보고 직달과 함께 왕건(王建)에게 귀부할 것을 의논한 뒤 932년 아들 영서(英舒)와 같이 고려에 귀부하였다.
태조가 대상(大相)으로 삼고 백성군록(白城郡祿)과 구마(廏馬) 세필, 채백(采帛)을 주고, 아들 함서(咸舒)는 좌윤(佐尹)으로 삼고, 정조(正朝) 준행(俊行)의 딸을 영서의 아내로 삼게 하였다.
견훤은 공직이 태조에게 항복함을 보고 매우 노하여 직달과 금서 및 그 딸을 잡아 가두고 단근질하여 죽였다. 좌승(佐丞)으로 죽으니 정광(政匡)을 추증하였다.
시호는 봉의(奉義)이다. 함서로 후사를 삼고 다시 사공삼중대광(司空三重大匡)을 추증하였다.
[참고문헌]
三國史記
高麗史
高麗史
[집필자]
문수진(文秀鎭)
수정일 | 수정내역 |
---|---|
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