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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韶顯)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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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異名)이민(李民)
자(字)범위(範圍)
시호(諡號)혜덕(慧德)
생년1038(정종 4)
졸년1096(숙종 1)
시대고려전기
활동분야종교 > 불교인
이자연(李子淵)
출생지개성

[상세내용]

소현(韶顯)
1038년(정종 4)∼1096년(숙종 1). 법상종(法相宗)의 고승. 속명은 민(民), 자는 범위(範圍).

중서령(中書令) 이자연(李子淵)의 아들로서 7월 3일에 개성 남쪽의 불령리(佛嶺里)에서 태어났다.

11세에 출가하여 해린국사(海麟國師)의 제자가 되었고, 이듬해 복흥사(復興寺)의 궁단(宮壇)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1061년(문종 15)에 왕륜사(王輪寺)의 오교대선장(五敎大選場)에 응시하여 대덕(大德)의 법계를 받았고, 1069년(문종 23)에는 중대사(重大師), 1071년에는 삼중대사(三重大師)가 되었다. 그의 법(法)을 이은 도생승통(導生僧統)이 제자가 된 것도 이때의 일이다.

그뒤 왕실 내전(內殿)에서 법석(法席)을 주관하거나 사찰에서 법회를 열고 강화(講話)하는 일에 몰두하였다.

1079년에 내전에서 대장법회(大藏法會)를 주관하였고, 같은해에 금산사(金山寺)의 주지로 부임하여 절을 중창하였는데 금산사의 역사상 이때가 가장 큰 규모의 사찰이 되었다고 한다.

가람의 증축뿐만 아니라 금산사의 남쪽에 광교원(廣敎院)을 설치하여 경전을 강독하는 한편 사경(寫經)‧인경(印經) 등 경전의 판각과 유포를 위한 간경장(刊經藏)으로도 이용하였다.

당시에 인경한 것으로는 규기(窺基)의 저작인 『법화현찬(法華玄贊)』『유식술기(唯識述記)』를 비롯해서 유식법상계통(唯識法相系統)의 장소(章疏) 32부 353권을 교정, 개간하였으며, 그 사본을 유통시켰다.

1083년(순종 1)에는 개국사(開國寺)와 자운사(慈雲寺)에 선장(選場)을 마련하여 회주(會主)가 되었고, 그해 승통(僧統)이 됨에 따라 현화사(玄化寺)에 잠시 머물렀다.

그뒤 다시 금산사로 돌아가서 후학들을 지도하다가 12월 18일 봉천원(奉天院)에서 입적하였다. 세수 58세, 법랍 47세였다. 숙종혜덕왕사(慧德王師)라는 시호를 내렸고, 탑호(塔號)는 진응(眞應)이라 하였다.

제자로는 도생승통 등 1천여 인이 있었다. 현재 금산사의 동쪽 부도전(浮屠殿)에 혜덕왕사진응탑의 비명(碑銘)이 남아 있다.

[참고문헌]

朝鮮佛敎通史(李能和, 新文館, 1918)

[집필자]

박상국(朴相國)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