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흔(官昕)
[상세내용]
관흔(官昕)
생졸년 미상. 후백제의 장군.
928년(경순왕 2) 8월 견훤의 명을 받아 무리를 거느리고 양산성(陽山城: 沃川)을 쌓았다. 그러나 고려 태조가 명지성장군(命旨城將軍) 왕충(王忠)에게 명하여 양산성을 치자 패주하였다.
관흔은 퇴각하여 대량성(大良城)을 확보하고 군사를 풀어서 대목군(大木郡) 벼를 베었다. 또 그 다음에는 오어곡(烏於谷)에 군사를 나누어 주둔하여 죽령(竹嶺)을 봉쇄하기도 하였다.(주1)
928년(경순왕 2) 8월 견훤의 명을 받아 무리를 거느리고 양산성(陽山城: 沃川)을 쌓았다. 그러나 고려 태조가 명지성장군(命旨城將軍) 왕충(王忠)에게 명하여 양산성을 치자 패주하였다.
관흔은 퇴각하여 대량성(大良城)을 확보하고 군사를 풀어서 대목군(大木郡) 벼를 베었다. 또 그 다음에는 오어곡(烏於谷)에 군사를 나누어 주둔하여 죽령(竹嶺)을 봉쇄하기도 하였다.(주1)
대량성확보 및 죽령봉쇄 |
『고려사』 1권 태조 무자 11년(928) 기사, " 8월에 ... 견훤이 장군 관흔(官昕)을 시켜 양산(陽山)에 성을 쌓았기 때문에 왕은 왕충(王忠)을 시켜 쳐서 패주케 하였다. 관흔은 퇴각하여 대량성(大良城)을 확보하고 군사를 풀어서 대목군(大木郡) 벼를 베었다. 또 그 다음에는 오어곡(烏於谷)에 군사를 나누어 주둔하니 죽령(竹嶺) 길이 막히였다...." 참고. |
[참고문헌]
三國史記
高麗史
高麗史
[집필자]
정중환(丁仲煥)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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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