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부인(寧花夫人)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24C601D654BD80D0870X0 |
이명(異名) | 문자황후(文資皇后) |
이명(異名) | 문의왕비(文懿王妃) |
생년 | ?(미상) |
졸년 | 870(경문왕 10) |
시대 | 통일신라 |
본관 | 경주(慶州) |
활동분야 | 왕실 > 비빈 |
[상세내용]
영화부인(寧花夫人)
미상∼870년(경문왕 10). 신라 경문왕의 비. 성은 김씨(金氏). 헌안왕의 맏딸이다.
헌안왕이 860년(헌안왕 4) 9월 임해전(臨海殿)에서 연회를 베풀었을 때 응렴(膺廉: 경문왕)이 약관 20세(15세라고도 함.)로 참석하였다. 이 자리에서 헌안왕은 응렴이 덕이 있는 것을 알아보고 사위로 삼고자 하였다.
왕은 응렴에게 그의 두 딸, 즉 영화부인이 된 맏딸(20세)과 경문왕의 차비(次妃)가 된 둘째딸 중에서 취처(娶妻)하도록 하였다. 응렴이 부모의 말대로 아름다운 둘째공주를 취하고자 하였으나, 승려낭도인 흥륜사(興輪寺) 범교사(範敎師)의 권유로 맏딸에게 장가들게 되었다.
석달 뒤 헌안왕이 죽으면서 응렴에게 왕위를 물려주었으므로 응렴은 경문왕이 되고, 헌안왕의 맏딸은 경문왕의 비인 영화부인이 되었다. 일명 문자황후(文資皇后)라고도 하는데, 866년(경문왕 6) 정월에 문의왕비(文懿王妃)로 봉해졌다.
그의 아들 태자 정(晸)이 헌강왕이 되었다.
헌안왕이 860년(헌안왕 4) 9월 임해전(臨海殿)에서 연회를 베풀었을 때 응렴(膺廉: 경문왕)이 약관 20세(15세라고도 함.)로 참석하였다. 이 자리에서 헌안왕은 응렴이 덕이 있는 것을 알아보고 사위로 삼고자 하였다.
왕은 응렴에게 그의 두 딸, 즉 영화부인이 된 맏딸(20세)과 경문왕의 차비(次妃)가 된 둘째딸 중에서 취처(娶妻)하도록 하였다. 응렴이 부모의 말대로 아름다운 둘째공주를 취하고자 하였으나, 승려낭도인 흥륜사(興輪寺) 범교사(範敎師)의 권유로 맏딸에게 장가들게 되었다.
석달 뒤 헌안왕이 죽으면서 응렴에게 왕위를 물려주었으므로 응렴은 경문왕이 되고, 헌안왕의 맏딸은 경문왕의 비인 영화부인이 되었다. 일명 문자황후(文資皇后)라고도 하는데, 866년(경문왕 6) 정월에 문의왕비(文懿王妃)로 봉해졌다.
그의 아들 태자 정(晸)이 헌강왕이 되었다.
[참고문헌]
三國史記
三國遺事
三國遺事
[집필자]
김복순(金福順)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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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